메멘토 모리는 무엇을 기억하라는 것인가?

by 박은석


로마제국 시대에는 주변 국가들과 숱한 전쟁을 치렀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군인들을 위해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성대한 개선식을 열어주었다.

개선장군의 마차가 로마시내로 천천히 들어오고 그 앞뒤로 군사들이 행진을 하였는데 그 행렬 사이로 전쟁포로들이 끌려 나오면서 목청껏 소리를 외쳤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메멘토 모리!”

이 말은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이다.


개선장군과 병사들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날에 이 말을 듣게 한 것은 전쟁에서 이겼다고 해서 너무 교만하지 말라는 교훈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선생님들께서 이 말을 가지고 우리 모두에게도 죽는 순간이 있으니까 너무 잘난 체하지 말고 겸손히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도 겸손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잔치하는 날인데 주인공을 향해서 “너도 언젠가 죽을 테니까 까불지 말아라.”라는 식의 초 치는 말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아무리 좋은 교훈이라도 때와 장소에 어울리지 않으면 안 좋게 들릴 게 뻔하다.

로마인들이 그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래서 좀 다르게 생각해 보았다.


도대체 누구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인가?

지금 개선식을 하는 개선장군이나 병사들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은 어법상 말이 안 맞는다.

그들은 죽지 않고 살아 있다.

미래에 그들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메멘토(기억하라)’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그때 외쳤던 ‘모리(Mori, 죽음)’는 이미 죽은 사람들의 죽음이다.

그래야 말이 맞는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갑자기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엉뚱하게 생각해봤더니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개선식의 그 화려한 축제 속에서 그들이 잊지 말고 꼭 기억해야 할 죽음은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승리를 얻기까지 목숨을 바치며 싸웠던 동료들의 죽음이다.

그들의 죽음이 없었다면 승리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비록 오늘의 개선식에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전쟁터에서 장렬하게 싸우다 죽은 동료들의 죽음을 잊지 말라고 외쳤던 것은 아닐까?

나는 로마의 군인들이 전장에서 쓰러져간 동료들의 죽음을 기억하면서 개선식에 참여했다고 믿고 싶다.


살아 돌아온 군인들을 보면서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이 보고 싶어 통곡해야만 했던 유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를 줄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일이었다.




메멘토 모리를 정확하게 어떤 의미로, 누구에게 외쳐댔는지는 모르겠다.

2천 년 전으로 돌아가 로마인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에게도 죽음이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날들을 소중히 여기며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내가 오늘을 살 수 있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를 살리려고 대신 목숨을 버린 분도 있었을 테고, 나를 지키려고 온갖 수고를 마지않았던 분도 있었다.

나를 가르쳐준 스승이 있었고 나를 부축해준 친구들과 나를 따라준 후배들이 있었다.

그들의 희생으로 오늘 내가 살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나를 둘러싼 전 지구가 아니 전 우주가 나를 위해 묵묵히 희생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 삶은 결코 작거나 초라하지가 않다.


나를 위한 이 모든 희생들을, ‘메멘토 모리!’,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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