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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r 13. 2024

오늘은 시 한 편

오늘은 시 한 편 올려 놓고 가련다.




<그렇게 소중했던가> - 이성복


버스가 지리산 휴게소에서 십 분간 쉴 때

흘러간 뽕짝 들으며

가판대 도색 잡지나 뒤적이다가

자판기 커피 뽑아 한 모금 마시는데

버스가 떠나고 있었다.     

종이컵 커피가 출렁거려 불에 데인 듯 뜨거워도

한사코 버스를 세워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가쁜 숨 몰아쉬며 자리에 앉으니

회청색 여름 양복은 온통 커피 얼룩     

화끈거리는 손등 손바닥으로 쓸며

바닥에 남은 커피 입안에 털어 넣었지     

그렇게 소중했던가?

그냥 두고 올 생각 왜 못했던가?     

꿈 깨기 전에는 꿈이 삶이고

삶 깨기 전에 삶은 꿈이다.




언젠가 나도 자판기 커피를 들고 달렸던 적이 있었다.

커피가 컵 밖으로 뛰쳐나와도 내 달리기는 계속되었다.

커피가 뜨겁다는 느낌도 들었는데

커피를 다 쏟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달리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커피 물에 옷이 얼룩져도 버스를 잡았다고 환호성을 질렀다.

나도 그랬다.

커피가 뭐길래.

100원짜리 동전 집어 넣고 밀크커피 버튼을 눌렀는데 커피가 나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이놈의 자판기가 내 동전을 낼름 받아먹기만 했나?

동전 반환 버튼을 눌러도 동전이 나오지 않았다.

국산 기계는 맞아야 한다며 자판기를 두드리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우연히 동전이 우르르 쏟아지기도 했다.

100원짜리 동전 하나 집어들면서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뿌듯함이 있었다.

100원짜리 동전 하나인데 그게 그렇게 소중했었나?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샀더니 거스름돈을 건네주었다.

하루 종일 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퇴근 후 집에 와서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100원짜리 동전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자판기가 그 동전을 먹었을 때는 때려 부술듯이 분노했었다.

100원짜리 동전 때문에 3차세계대전이 일어날 것 같았다.

그런데 주머니에서 나와 탁자 위에 올려놓은 100원짜리 동전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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