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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r 14. 2024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을 바라보는 나의 생각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유명한 산부인과 병원이 있었다.

그러니까 10년 전이었다.

사거리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같은 건물에 산후조리원도 있었으니까 그럭저럭 잘 유지하는 병원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그 건물의 간판이 바뀌었다.

산부인과 병원 대신에 척추, 관절, 통증 치료 병원이 들어섰다.

이 동네는 대한민국 1기 신도시이다.

정부에서 대대적인 지원을 해서 만든 도시이다.

부랴부랴 아파트를 지었다.

까치마을, 청솔마을 등 여러 마을들을 만들고 1991년부터 입주가 시작되었다.

이산화탄소를 많이 마시던 서울 사람들이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어서 이곳으로 몰려왔다.

갑자기 늘어난 아이들 때문에 학교는 미어터졌다.

놀이터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30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 그 아이들이 자라서 결혼을 했고 이 마을을 떠나갔다.

30년 전에 이곳에 이사를 온 40대는 이제 70대의 노년이 되었다.




30년 전에는 이 동네에서 산부인과 병원이 잘 되었다.

산후조리원도 북새통이었다.

아기들이 자라가면서 이 동네에는 소아과병원도 많이 생겼다.

깔끔한 신도시이면서 서울로 출퇴근하기도 좋은 동네이다 보니 너도나도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그에 비례해서 집값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갓 결혼한 신혼부부들이 살기에는 부담스러운 동네로 변해갔다.

부모님이 큰돈을 보태주지 않는 이상 이 마을에서 집을 구해서 살기는 어려워졌다.

젊은 사람들이 떠나가자 이 동네는 어르신들이 많은 동네가 되고 말았다.

30년 전에는 젊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던 사람들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떠나가면서 초중고등학교의 학생 수가 줄어들었다.

10년 전에 비해서 반토막이 나 버렸다.

아이들의 질병을 치료해 주던 소아과병원들이 하나씩 사라졌다.

산부인과는 진작에 없어졌다.

그 자리에 안과, 비뇨기과, 이비인후과와 한방병원들이 들어섰다.




우리 동네는 수도권에 속한 대도시이지만 산부인과 병원을 찾아보기 힘들다.

산부인과 의사들을 억지로라도 붙잡아와서 이곳에 앉혀야 하는 판국이다.

그런데 산부인과 의사가 과연 이곳에 올까? 산모를 만나는 게 가뭄에 콩 나듯이 하는 이 동네에 산부인과 선생이 올 턱이 없을 것 같다.

소아과 의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동네는 젊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의사보다 어르신들을 상대하는 의사들을 더 많이 보게 되는 동네가 되고 말았다.

도시도 생성되고 성장하고 쇠퇴하는 수순을 밟는다.

그에 따라 그 도시의 상권도 달라지고 의료 환경도 달라진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나는 전국의 의과대학에서 의대생들을 2천 명 늘리든, 3천 명 늘리든 우리 동네에는 산부인과 의사나 소아과 의사가 올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본다.

대학병원도 가까이 있고 유명한 종합병원들도 있지만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이유는 일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 사회는 저출산, 초고령화 사회가 되었다.

그래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관절과 척추 병원, 비뇨기과, 안과, 이비인후과들이 성행하고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 병원들도 문을 닫게 될 것이다.

환자가 찾아오지 않는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짐을 쌌던 산부인과, 소아과 의사들처럼 그들도 언젠가는 짐을 싸야 할지 모른다.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다.

내가 사는 동네에 내가 원하는 의사가 부족할 뿐이다.

그걸 의사들의 문제라고만 할 수는 없다.

내가 사는 동네의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단순하게 의사의 숫자를 늘려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닌 것 같다.

사람이 많으면 뭐 하나? 그보다 먼저 일할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언젠가는 의사 실업자 문제를 대면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머리를 맞대어 대화하고 해결책들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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