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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y 27. 2024

시간을 조금만 넓게 보면 모든 게 다 괜찮다

   

가만히 있는데 불안감이 몰려올 때가 있다.

누가 다그친 것도 아닌데 뭔가 빨리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괜히 허송세월 보내는 것 같다.

쌩쌩거리며 나를 지나쳐 질주하는 사람들을 본다.

어쩌면 저렇게 잘 달리는지 부러운 마음이 든다.

한번 뒤쳐지면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도 일단은 뜀박질을 한다.

그거라도 안 하면 불안해서 견디지 못할 것 같다.

이런 마음이 드는 한 가지 이유는 내가 시간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아야 100년이다.

지금까지 절반 넘게 사용했다.

내 시간의 절반을 사용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나만큼 살았으면서도 나보다 앞서가는 사람이 있다.

나보다 적은 시간을 사용하고서도 나를 앞서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따라잡자니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시간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었던 초조함이 부상한다.




시간만 넉넉하게 주어진다면 어떻게 방법을 모색해 볼 텐데 그럴 시간이 없다.

만약에 내가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존재라면 어떨까?

시간 속에서 사는 게 아니라 시간을 초월해서 사는 존재라면 어떨까?

그런 존재가 된다면 초조함이나 불안감 같은 것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못 했더라도 나중에 하면 되니까.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면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고 항상 현재만 있을 것이다.

100년 전에 일어난 일도 지금 현재에 경험하는 일이 될 테고, 100년 후에 일어날 일도 지금 현재에 일어나는 일로 다가올 것이다.

항상 현재에만 존재한다면 아쉬움도 없을 것이다.

아쉬운 마음은 과거를 전제로 한다.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라는 마음이 아쉬움을 불러일으킨다.

항상 현재에만 존재한다면 불안하지도 않을 것이다.

불안한 마음은 미래를 전제로 한다.

‘앞으로 그러면 어떻게 하지?’라는 마음이 두려움을 불러온다.




아쉬운 마음, 두려운 마음, 초조한 마음이 드는 것은 내가 시간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감싸고 있는 시간의 정체를 알고 싶다.

한 시간, 하루, 한 달, 1년이라는 이 시간은 무엇일까?

지구가 한 바퀴 도는 것을 하루라고 하고 그 하루를 24로 나눈 것을 시간이라고 한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 것을 1년이라고 하고 그 1년을 12로 나눈 것을 한 달이라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우리의 시간은 지구 안에서 그리고 태양계 안에 있는 것이다.

만약에 우리가 태양계를 벗어나 더 넓은 우주로 나갈 수 있다면 시간의 개념이 달라질 것이다.

시간이 태양계 안에서와 지구 안에서는 절대적인 힘을 발휘할지 모르지만 태양계를 벗어나면 시간도 하나의 의미 없는 몸짓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여기서는 당장 내일까지 해야 할 일이라면서 호들갑을 떨겠지만 거기서는 “내일이 뭔데?”라고 물을 것 같다.




고두현은 <별에게 묻다>라는 시에서 천왕성에서는 하루가 일생이라고 했다.

지구에서 42년이 지나는 동안 천왕성에서는 낮이 계속되고, 지구에서 또 42년이 지나는 동안 천왕성에서는 밤이 계속된다.

낮과 밤이 합쳐져서 하루가 되는 것이니까 천왕성에서의 하루는 지구에서의 84년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천왕성에서 “내일 만나자” 약속하면 84년 후에나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 100년을 살아가면서 매일 아쉬워하고 후회하는 우리에게 천왕성의 사람이 한마디 한다면 뭐라고 할까?

고작 하루의 일일 뿐인데 뭘 그리 아쉬워하고 뭘 그리 걱정하냐고 할 것이다.

내일 잘하면 되지 않겠냐고 할 것이다.

40년 전에 잘못한 결정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면 천왕성에서의 사람이 한마디 할 것이다.

아직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다고.

오후에 잘하면 된다고.

아쉬운가?

초조한가?

불안한가?

시간을 조금만 넓게 보자.

그러면 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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