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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ug 27. 2024

갑작스런 설악산 당일 종주, 한계령-대청봉-오색(3)


설상가상으로 그분들은 물도 많이 챙기지 않고 온 것이다.

나는 7병을 챙겨서 왔는데.

나에게서 얻은 물 한 병이 그들에게는 생명수였나 보다.

힘이 난다고 했다.

가는 길이 같았다.

오색까지 가서 거기서 택시를 타고 한계령휴게소로 가야 한다.

오색 남설악탐방지원센터까지는 1킬로미터도 안 남았다며 그분들을 다독이며 출발했다.

하지만 이미 지쳐버린 그들의 걸음 속도는 답답할 정도로 느렸다.

날은 어두워지는데 둘은 먼저 내려가고 둘은 천천히 오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콜택시를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픈 아내를 두고 어떻게 따로 가냐며 나에게 먼저 내려가라고만 했다.

헤드랜턴은 있냐고 물었는데 헤드랜턴도 없었다.

참 답답했다.

그러면 휴대폰 플래시를 사용하라고 했다.

500미터쯤 같이 내려오다가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나 먼저 내려가서 택시를 잡아 놓겠다고 했다.

시간상 어쩔 수 없었다.




부랴부랴 걸어서 내려오니 남설악탐방지원센터의 불빛이 보였다.

시간에 구애되지 않고 바라보았다면 참 낭만적인 분위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상황은 분위기를 잡을 상황이 아니었다.

빨리 택시를 불러야 했다.

산에서는 전화가 잘 터지지 않아서 콜택시 예약을 못했다.

집에 있는 아내에게도 도움을 청한 상태였다.

콜택시가 곧 올 줄 알았다.

잘 하면 8시 이전에 한계령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콜택시 연결이 안 되었다.

그 시간에 오색 근처에 있는 택시가 없었다.

몇 군데에서 연락이 왔는데 너무 멀었다.

그러는 동안에 뒤쳐졌던 가족 등반객들이 도착했다.

반갑기도 했지만 이미 시간은 7시 4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남설악탐방지원센터에서 한계령까지 택시로 가더라도 20분은 걸린다.

8시까지 가기에는 이미 늦었다.

오색그린야드호텔에 연락해서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택시기사 번호를 받았지만 그분도 어려웠다.

저녁 7시를 넘어선 시간. 남설악탐방지원센터 탐방로 입구의 문은 닫혀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자동문이 열렸다.
남설악탐방지원센터의 문은 닫혀 있고 콜택시 번호는 붙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한 대도 오지 않는 콜택시.


그러던 중에 콜택시 기사 한 분이 10분 후면 도착한다고 했다.

궁여지책이지만 그분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한계령휴게소 주차장이 8시에 폐쇄한다고 하던데 방법이 없겠냐고 여쭈었다.

고객의 마음을 얻기 위함인지 기사님께서는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하셨다.

오전에 내가 보기에는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 없어 보였는데 일단 기사님의 말을 듣기로 했다.

근처에 있었던 택시라면 2만원의 비용이 들 텐데 멀리 있던 콜택시였기에 깎아서 4만원을 드리기로 했다.

나와 그 가족이 반반씩 내기로 했다.

몇 분의 택시기사로부터 들은 정보로는 주말에는 한계령휴게소 주차장을 8시에 폐쇄하지만(주차장에 전화하면 7시에 폐쇄한다고 안내한다.) 주중에는 닫지 않는 날이 많다고 한다.

일단 그 말들을 믿어보기로 했다.

내가 착한 일을 했으니 혹시 하늘이 도와주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닫혔으면 차박 하루 하자고 했다.




오색 그린야드 호텔 앞에 편의점이 하나 있었다.

가족 일행이 고마웠다며 이온 음료 한 병을 건네주었다.

단숨에 한 병을 들이켰다.

잠시 후 택시가 도착했다.

제발 제발 하는 마음으로 한계령휴게소까지의 꼬불꼬불한 산길을 갔다.

혹시 우리가 불안할까 봐 그런지 택시 기사님은 주차장 관리인과도 친분이 있다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저녁 8시 30분이 다 되었는데 다행히 주차장이 개방되어 있었다.

너무나 감사했다.

개인정보지만 다음에 설악산 갈 때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나에게 도움을 준 두 분의 택시기사님 전화번호를 적어둔다.

010-2839-2011(오색기사님), 010-5372-2772(양양기사님).

언젠가 다시 연락드릴 것 같다.

깜깜한 주차장에서 땀에 절은 옷을 벗고 배낭에서 새 옷을 꺼내 갈아입었다.

별빛 총총한 한계령에 조금 더 머물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며 자동차의 페달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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