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 있는 카페에 갔다.
카페가 있는 정원이라고 하는 게 더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운 좋게도 그 정원을 만든 원장님으로부터 정원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정원 곳곳에 묻어 있는 사연들을 들으면서 내 입에서는 연신 대단하셨다는 말이 터져 나왔다.
원장님을 졸졸 따라가고 있었는데 원장님이 잠깐 여기를 보라고 하셨다.
가로 2미터 세로 2미터 정도의 작은 연못이었다.
그 안에 화분 세 개가 있었고 화분에는 수련이 심겨 있었다.
겨울의 초입이지만 꽃도 피어 있었다.
솔직히 화초에 대해서 문외한이기에 그 꽃을 수련이라고 알려주지 않았으면 그냥 연꽃으로 생각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그런데 수련이라고 하니까 그 꽃을 한 번 더 쳐다보게 되었다.
이름을 몰랐을 때는 내 곁에 있는 존재라도 그저 의미 없는 하나의 몸짓으로 치부하며 지나치지만 내가 그의 이름을 알게 되면 한 번 더 쳐다보게 되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수련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인상파 화가 모네의 이름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그를 빛의 화가라고 부른다.
같은 장소에 앉아서 같은 건물을 보며 그림을 그렸는데 아침에 그린 그림과 점심때 그린 그림과 저녁에 그린 그림이 달랐다.
아침빛이 다르고 점심빛이 다르고 저녁빛이 다르기 때문에 그 빛들을 받는 건물도 다르게 보였기 때문이다.
수평선 위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그린 <인상, 해돋이>라는 그림 때문에 ‘인상파’라는 이름을 얻게 된 작가도 바로 이 사람 클로드 모네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피사체는 빛의 변화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이를 증명했던 이들이 인상파 화가들이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빛깔을 색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보이는 빛과 칠하는 색으로 인생을 그리려고 했을 것이다.
그 방법으로 모네가 택한 것은 연못에 핀 수련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 자그마한 연못이 지금은 모네 덕분에 유명해졌다.
수련은 연꽃의 일종으로 물속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
뭘 모르는 사람들은 나처럼 물에서 피는 연꽃이라고 해서 수련(水蓮)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배워야 한다.
어떤 이름을 들으면 그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수련은 물 수(水) 자를 쓰는 게 아니라 잠잘 수(睡) 자를 쓴다.
그러니까 수련은 잠자는 연꽃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할 때의 수련을 보면 저녁이 되면 꽃잎을 오므리고 아침이 되면 꽃잎을 활짝 편다.
날이 어두우면 꽃을 오므리고 햇빛이 밝게 비치면 꽃을 편다.
그 모습이 저녁에 눈을 감고 잠을 자다가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는 사람의 모습을 닮았다.
그래서 이 꽃을 잠자는 연꽃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나잇살 좀 먹은 수련은 저녁이 되어도 여전히 꽃을 피우고 있기도 한다.
사람도 어렸을 때는 저녁에 일찍 자는데 어른이 되면 한밤중에도 잘 안 잔다.
수련의 크기는 그 뿌리가 심겨 있는 화분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한다.
사람도 그렇다.
자신의 바탕과 기본기에 따라 그 사람의 도량이 달라진다.
꽃을 많이 피운 수련은 그 뿌리나 가지에 상처가 많다고 한다.
사람도 그렇다.
인품이 훌륭하고 큰사람은 그 못지않게 아픔과 상처가 많다.
수련은 씨앗을 통해서도 번식하고 뿌리를 통해서도 번식하고 꽃을 통해서도 번식하고 심지어 이파리를 통해서도 번식한다고 한다.
정말 그런가 해서 찾아봤더니 정말 그랬다.
수련은 다양한 방법으로 살아가고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번식한다.
사람도 그렇다.
어떤 사람은 공부를 잘하고 어떤 사람은 손재주가 좋고 어떤 사람은 대인관계가 좋다.
외공이 강한 사람도 있고 내공이 강한 사람도 있다.
누구의 삶이 더 낫다고 할 수 없다.
자신의 연못에서 자신의 화분에 뿌리를 내리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