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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Nov 10. 2020

동의보감 앞에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선조임금 당시에 왕의 명을 받은 허준은 무려 14년 동안 연구하여 마침내 1610년에 조선의 실정에 맞는 의학서인 동의보감(東醫寶鑑)을 집대성하였다. 처음에는 허준을 돕는 5명의 의관들이 있었지만 여러 사정이 생겨서 허준이 홀로 마무리하였다.


그동안 피난길에 오르기도 했고, 2년 가까운 유배생활을 하기도 했고, 임금이 승하하여 새로운 임금인 광해군을 맞이하기도 했다.


동의보감은 총 25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과 질병을 다룬 내경편(內景篇) 6권, 외과 질병을 다룬 외형편(外形篇) 4권, 그 외 신경정신과 등 다양한 질병을 다룬 잡병편(雜病篇) 11권, 약물에 관한 지식을 다룬 탕액편(湯液篇) 3권, 침술을 다룬 침구편(鍼灸篇) 1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로 엄청난 양의 질병과 치료방법들을 정리하였다.




허준은 사람의 오장육부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보았다. 그래서 자연의 질서를 따르면 건강하고 그러지 않으면 질병이 생긴다고 하였다.


허준은 동의보감의 첫머리인 내경편에서 “우주에서 사람이 가장 귀하다. 머리가 둥근 것은 하늘을 상징하는 것이며 발이 모난 것은 땅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늘에 사시(四時)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사지(四肢)가 있고, 하늘에 해와 달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두 눈이 있다. 하늘에 비와 이슬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눈물과 콧물이 있다. 또한 땅에 샘물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혈맥이 있고 땅에 풀과 나무가 자라듯이 사람에게는 머리카락이 자란다.”라고 하였다.

사람은 그 몸이 우주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우주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허준은 우주적인 존재로서 사람이 스스로 우주의 질서를 잘 따르는 양생(養生)의 법을 실천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하루, 한 달, 한 해 동안 금해야 하는 일이 있다고 하였다.


하루의 금기사항은 저녁에 포식하지 않는 것이고, 한 달의 금기는 그믐에 만취하지 않는 것이며, 한 해의 금기는 겨울에 멀리 여행하지 않는 것이다.

400년 전에 살았던 위인이 구구절절 오늘날 우리의 삶을 지켜보면서 가르쳐주는 것 같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는 그 가르침대로 살지 않고 모두 다 거꾸로 행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저녁에는 과식을 해서 거북해하고, 월말에는 월급 받은 김에 “위하여!”를 외치며 과음을 하고, 겨울에는 좀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데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넘어져서 몸과 마음의 질병을 얻는다.




제 몸 하나 지키지 못한다는 말을 하는데 우리 사람에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말이다.

원래 태어난 대로 자연의 질서를 잘 지켜서 우주적인 존재로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그런데 우리가 질서를 지키지 않고 탈선을 하면 먼저는 자신의 몸이 망가져서 병이 들고 그다음에는 주변 환경들을 오염시키고 나아가서는 전 우주를 훼손시키고 마는 것이다.


오늘날 숱하게 많은 질병들, 처참하게 이어지는 자연 훼손들, 우주공간으로 쏘아 올린 3천 개가 넘는 인공위성들을 보라. 모두 다 탈선의 증거들이다. 인공위성들 중의 2천 개 정도는 고장이 나서 우주 쓰레기처럼 떠돌고 있다는데 이걸 어떡하나?


허준이 보았다면 땅을 치고 가슴을 치면서 통곡했을 것 같다.

자기는 동의보감을 써서 사람들에게 잘 살아보라고 했는데 우리는 동의보감을 받았으면서도 더 망쳐놨으니 말이다.

건강을 위한다며 보약 한 첩 마시기 전에 먼저 동의보감 앞에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그나저나 동의보감(東醫寶鑑)은 ‘보배로운 거울과 같은 동방(조선)의 의술’이란 뜻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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