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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엘지트윈스가 페이스메이커였다

by 박은석


새들이 하늘을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 브이(V)자 모양을 띤다.

꼭지점에 위치한 새가 맨 아페서 날아가는 새다.

그렇게 날아가는 이유는 공기의 저항을 서로 나누기 위함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공기도 엄청난 힘이 있다.

바람이 심하게 불면 나무가 뽑히고 지붕이 날아가기도 한다.

공기의 힘이다.

하늘을 나는 새들은 언제나 공기의 힘을 느낀다.

그 힘이 새들에게는 저항감으로 다가온다.

맨 앞에서 날아가는 새에게는 엄청난 공기를 뚫고 나아가야 하기에 엄청난 저항감을 받는다.

그런데 그 뒤에 위치한 새들은 앞의 새보다 훨씬 적은 공기의 저항을 받는다.

앞에 있는 새 때문에 편안하게 날아가는 셈이다.

한동안 그렇게 날아가던 새들은 어느 순간 위치를 바꾼다.

맨 앞에서 날던 새가 뒤로 빠지고 뒤에 있던 새가 앞으로 나선다.

그동안 처절하게 공기의 저항을 맞았으니 이제는 좀 쉬라고 하는 듯이 보인다.




이런 이치를 운동 경기에 적용하기도 한다.

마라톤이나 사이클, 스피드 스케이팅 같은 경기에서 볼 수 있다.

같은 팀 선수가 두 명 있을 경우 둘 다 1등을 할 수는 없다.

그럴 때는 작전을 짠다.

한 명을 1등이 되도록 다른 한 명이 희생한다.

희생한다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앞에서 뛰면서 바람을 맞아주는 것이다.

뒤에 있는 선수를 위해서 온몸으로 공기의 저항을 받아주는 것이다.

그러면 뒤에 따라오는 선수는 훨씬 수월하게 달릴 수 있다.

그러다가 막판 약속한 순간이 오면 뒤에서 뛰던 선수가 앞으로 나온다.

그동안 아꼈던 힘을 다 쏟아서 결승선으로 달린다.

경기의 대부분을 뒤에서 뛰었던 선수였지만 막판에 좋은 기록을 세운다.

사람들은 결승선에 누가 먼저 들어왔느냐로 그 선수의 값어치를 매기지만 팀을 운영하는 감독과 코치들은 다 안다.

경기 내내 앞에서 뛰면서 공기의 저항을 맞았던 선수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뒤에 있는 선수를 위해서 앞에서 바람을 맞아주는 선수, 우리는 그런 선수를 페이스 메이커(pacemaker)라고 부른다.

페이스메이커는 자신의 기록보다 뒤에서 따라오는 동료의 기록에 더 관심이 많다.

힘이 있다고 해서 전력질주를 하지 않는다.

앞에서 빨리 뛰면 뒤에서는 더 빨리 뛰어야 한다.

그러면 일찍 지쳐버린다.

뒤에 있는 선수를 봐준다고 너무 천천히 뛰지도 않는다.

그러면 뒤따르는 선수가 좋은 기록을 낼 수가 없다.

페이스메이커는 그야말로 적당히 뛴다.

뒤에 있는 선수가 지치지 않도록 하면서 너무 늦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그의 가장 큰 임무이다.

아무나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뛰다 보면 페이스메이커도 욕심이 생긴다.

하지만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뛰다 보면 페이스메이커도 지친다.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야 했으니 지칠만도 하다.

그래도 페이스메이커는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안간힘을 쓰면서 적당한 속도를 유지한다.

약속한 거리만큼, 자기가 인도해야 할 거리만큼 치열하게 달린다.




2025년 한국 프로야구의 분위기가 뜨겁다.

개막일부터 엘지트윈스가 줄곧 선두를 달렸다.

잠시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있지만 금방 되찾았다.

그런데 또다시 2위로 내려갔다.

솔직히 기분이 안 좋다.

선수들에게 야유를 보내고 싶은데 경기 후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는 선수들의 얼굴이 안쓰럽다.

온몸으로 공기의 저항을 맞느라 만신창이가 된 것 같다.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서 프로야구의 흥행을 이끌어온 것 같다.

그래, 잠시 선두 자리를 양보해 주는 것도 낫겠다.

그것이 전략이라면 전략이다.

다들 1위 자리를 꿈꾸겠지만 1위 자리를 지켜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들도 겪어보라고 하고 싶다.

잠시 맞바람의 저항을 남들이 맞게 하자.

지금은 그들이 페이스메이커다.

우리는 그 뒤에서 힘을 비축하다가 적당한 때에 치고 올라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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