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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절을 보내며 대한민국을 생각하다

by 박은석


나는 대한민국 사람이다.

내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내 나라가 있다는 것은 당연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

국가가 형성되려면 최소한 3가지의 요소가 갖추어져야 한다.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 국가의 존재 자리를 규정하는 영토, 그리고 국가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헌법이다.

일제강점기에 우리에게는 국민이 있었지만 영토는 일본에게 빼앗겼고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헌법을 갖지도 못했다.

일본법이 다스리는 이상한 세상이 되고 말았다.

국가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이상한 국가가 아니라 제대로 된 국가를 세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당장 국가를 운영할 정부를 세우려고 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한반도 내에서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국경을 넘어 중국 땅에서 정부 각 부처를 조직했다.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였다.




“신과 인간이 하나가 되어 나라 안팎으로 협력하고 호응하여 한성에서 뜻을 일으킨 지 삼십일 남짓하여 평화적 독립을 삼백 개 이상의 나라들에게 다시 빛을 되찾은 것처럼 밝히고, 국민의 신임으로 완전하게 다시 조직한 임시정부는 영원하고도 완전한 자주독립의 복된 이로움으로 우리 자손인 후세의 백성에게 대대로 전하기 위하여 임시의정원의 결의로 임시헌장을 선포하노라.”

라는 전문 아래 10개 조에 이르는 법 조항을 선포하였다.

이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백성이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제로서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는 일절 평등한 나라이고 종교, 언론, 저작, 출판, 결사, 집회, 통신, 거주 이전, 신체 및 소유의 자유를 누리는 나라이다.

국민은 교육, 납세 및 병역의 의무가 있으며 국가는 인류의 문화와 평화에 공헌하기 위하여 국제연맹에 가입하고, 국토 회복 뒤 만 1년 안에 임시정부는 국회를 소집하겠다고 했다.




1919년 4월 11일에 상해 임시정부 헌장이 선포되었지만 실제로 이 법률이 실효되기까지는 오랜 기간이 지나야 했다.

1945년 8월 15일에 우리는 일제로부터 광복을 되찾았고 국토를 회복했다.

하지만 국토 회복 뒤 만 1년 안에 국회를 소집하겠다는 약속은 뒤로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

해방 후 3년이 지난 1948년 7월 17일에 비로소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되었다.

이날을 기념해서 우리는 7월 17일을 제헌절로 기념하고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제 제도를 수립하고 국민 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며 국제 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겠다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총 9번에 걸쳐 개정되었다.

헌법은 우리나라를 민주공화국으로 선포했지만 민주공화국을 피부로 느끼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흘러야 했다.

수천 년 동안 임금의 백성으로 살아오다가 30여 년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왔기에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못된 지도자들은 헌법을 조작해서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자신을 왕으로 삼는 독재국가를 구축하려고 했다.

위험천만한 상황을 막은 것은 국민이었다.

힘도 없고 빽도 없지만 그들에게는 헌법이 있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외치면서 그들은 당당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때로는 몽둥이가 날아오고 백골단의 이단옆차기가 날아왔다.

연중행사로 최루탄이 터지기도 했지만 언젠가는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 기관총이 불을 뿜고 탱크와 헬리콥터가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아프고 암울한 역사였다.

눈물과 분노가 뒤섞인 역사였다.

그 역사를 딛고 우리는 다시 여전히 헌법을 지켜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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