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과 광복절이 다가오면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책을 읽는다.
삼일절은 1919년이니까 100년도 넘었다.
광복절은 1945년이니까 올해가 80주년이다.
이미 지난 일이고 오래된 일인데 그 고리타분한 이야기들을 끄집어낼 필요가 있느냐 하겠지만 그럴 필요가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 때문만은 아니다.
오늘 내가 존재하는 것은 과거 수많은 사람들 때문임을 잊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 식구들은 만약 내가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다면 틀림없이 독립운동을 했을 거라고 말한다.
그런데 내가 만약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다면 나는 독립운동을 하지 못했을 것 같다.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도저히 내가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그분들의 발자취를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그저 그분들에 대한 책이라도 읽으면서 그분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을 뿐이다.
국민학교 5학년 때인가 위인전을 즐겨 읽었던 때가 있었다.
아버지가 할부로 전집을 사주셨다.
겨울방학의 긴긴 시간을 이용해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책을 읽었었다.
덕분에 독립운동가들을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했었다.
그런데 몇 해 전에 어느 신문에서 독립운동가 10명의 이름을 댈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자리에서 나도 테스트를 해 보았다.
독립운동가 10명 정도는 쉽게 댈 수 있을 것 같았다.
김구, 유관순,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안창호, 나석주, 김좌진, 홍범도, 이승훈, 조만식...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쉽게 입에서 나올 것 같았지만 실상은 그러지 않았다.
조금 뜸을 들여야 한 명씩 댈 수 있었다.
그만큼 내 기억 속에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다는 증거다.
그분들은 자신의 인생을 걸었건만 후대의 나는 그분들의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죄송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광복이 얼떨결에 주어졌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인 일본의 패망함으로 인해 우리가 땡잡았다는 것이다.
미국이 원자폭탄 두 발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뜨리고 소련이 두만강을 넘어 한반도로 진격했기에 일본이 두 손을 들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는 가만히 손 놓고 있었나?
그건 아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우리의 땅을 되찾고 주권을 되찾으려고 했다.
단순히 노력한 차원이 아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전 재산을 내놓았고 어떤 이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다.
흔히 산모가 자심의 목숨을 걸고 아이를 낳는다고 하는데 독립운동가들은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다.
그 덕분에 지금 나는 평화로운 나라에서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공짜로 얻은 것이 아니다.
누군가 피를 흘리고 목숨을 내놓아야 했기에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의 희생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삼일절과 광복절이 오면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책을 읽는다.
‘밀리의 서재’와 ‘교보문고’를 통해 여러 권의 책을 추려냈다.
<김구와 난징의 독립운동가들>, <한국광복군 약사>, <26일 동안의 광복>, <나는 대한독립을 위해 싸우는 외국인입니다>, <나는 대한민국 파수꾼입니다>, <밀정, 우리 안의 적>이 이번 광복절 어간에 읽을 책이다.
시간이 남는다면 ‘역사공간’에서 독립운동 위인전들을 읽을 생각이다.
독립운동가들이 저 높은 하늘나라에서 내려다본다면 흐뭇하실 거다.
누군가 자신들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내 이름이 어떻게 역사에 남을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내 이름을 기억해 주고 누군가 내 이름을 추앙해 준다면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독립운동가들이 성공한 삶을 산 사람임을 증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