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童話)를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분량이 짧아서 그런지 내용이 단순해서 그런지 아니면 그림이 많이 곁들여 있어서 그런지.
하지만 동화는 세상살이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권정생 선생의 <강아지똥>은 내가 읽은 최고의 동화 중 하나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그렇게 감동적으로 들려준 작품은 만나지 못했다.
러시아 작가 유리 나기빈은 <겨울떡갈나무>라는 동화를 통해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여주었다.
유리 나기빈은 1920년에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1940년에 단편소설로 러시아 문학계에 등단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솔제니친은 이 작품을 두고 자신의 작품인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보다 더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어느 시골학교의 2년 차 선생님인 안나 바실리예브나는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학부모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했다.
그런데 그 반에 사브시킨이라는 지각대장 아이가 있었다.
사브시킨은 하루도 제시간에 출석한 적이 없는 골치 아픈 아이였다.
하루는 아이들에게 명사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있는데 사브시킨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나는 기분이 상했지만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 꾹 참았다.
명사의 개념을 다 설명한 후에 안나는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알고 있는 명사를 말해 보라고 하였다.
창문, 책상, 집.
아이들은 저마다 명사를 하나씩 발표했다.
바로 그때 사부시킨이 “겨울떡갈나무요!”라고 외쳤다.
안나 선생님은 떡갈나무는 명사가 맞지만 앞에 붙은 ‘겨울’이라는 말은 빼야 한다고 했다.
‘겨울떡갈나무’는 ‘겨울의 떡갈나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부스킨은 아니라며 ‘겨울떡갈나무’가 명사라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잖아도 사부시킨이 매일 지각하는 것에 기분이 상했던 안나 선생님은 수업이 끝난 후에 사부시킨을 교무실로 불렀다.
안나는 사부시킨에게 도대체 왜 매일 지각하는지 물었다.
사부시킨은 한 시간 전에 집에서 나오는데 왜 매일 지각하는지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안나는 사부시킨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해서 방과 후에 가정방문을 하기로 했다.
수업은 오후 2시에 끝이 났다.
오후 3시에 사부시킨의 엄마가 출근을 하기 때문에 안나는 그전에 사부시킨의 엄마를 만나보려고 했다.
사부시킨의 집에 가려면 숲을 통과해야 했다.
숲에 들어선 안나는 낯선 풍경들에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나 있는 동물들의 발자국과 호두알처럼 생긴 사슴똥도 보았다.
얼음과 눈 사이로 흐르는 물도 신기했다.
물줄기가 자잘한 거품으로 바뀌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조그만 거품을 매단 물줄기가 마치 은방울꽃 같았다.
안나는 사부시킨이 앞에서 기다리는 것도 잊어버린 채 숲속의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때 안나의 눈에 떡갈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사부시킨이 말했던 그 겨울떡갈나무였다.
그 나무는 크고 위풍당당해서 숲의 수호자처럼 보였다.
사부시킨은 안나에게 겨울떡갈나무 밑동을 파보면 놀라운 세상이 보인다고 했다.
실제로 거기에는 딱정벌레, 고슴도치, 개구리, 도마뱀, 무당벌레 등 수많은 생명체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힘센 떡갈나무는 왕성한 생명의 온기로 그 작은 생명체들에게 좋은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고 있었다.
그때 사부시킨이 소리치는 바람에 안나가 시계를 봤더니 3시 15분이었다.
3시에 사부시킨의 엄마를 만나기로 했는데 안나가 지각을 하고 만 것이다.
안나는 사부시킨이 지각한다고 언짢아했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사부시킨과 헤어지며 안나 선생님이 말했다.
“사부시킨, 오늘 선생님에게 멋진 산책을 시켜줘서 고마워.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 숲길을 통해 학교를 다녀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