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헝가리 작가.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사탄탱고>, <저항의 멜랑콜리>, <라스트 울프>, <서왕모의 강림>, <세계는 계속된다>, <뱅크하임 남작의 귀향>이라는 작품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되자마자 전자도서관을 통해 <사탄탱고>, <저항의 멜랑콜리>, <라스트 울프>, <서왕모의 강림>을 대출했다.
매스컴에서는 '묵시록 문학의 거장'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묵시문학이라는 기사를 보자 성경의 <요한계시록>을 떠올리게 되었다.
세상 끝날을 이야기하는 소설인가 싶었다.
야심차게 <사탄탱고>를 펼쳤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겼는데 무슨 이야기인지 도무지 감이 안 잡혔다.
이럴 때는 작품 해설을 읽어본다.
작품 해설을 읽는데 너무 신기했다.
해설하는 내용이 나에게는 처음 읽히는 글이었다.
즉, 내가 작품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
작품 해설을 봐서 그런지 내용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마음에 그려졌다.
그러기도 잠시.
살짝 딴생각을 하면 내가 어디를 읽고 있는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몇 페이지 앞으로 가서 다시 읽었다.
겨우 2번째 읽었는데 끝부분이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이 안 난다.
다시 끝의 몇 페이지를 읽었다.
이제야 조금 감이 잡혔다.
'아, 이런 책이었구나!'
두 번째 책으로 <저항의 멜랑콜리>를 읽었다.
이것도 역시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었는데 무슨 내용인지 감이 안 잡혔다.
이번에도 작품 해설을 읽고 책의 첫 페이지부터 다시 읽었다.
<사탄탱고>의 경험을 기억하면서 집중해서 읽으려고 노력했다.
그나마 <사탄탱고> 때보다는 나았다.
세 번째 책으로 <라스트 울프>를 읽었다.
첫 두 권이 500-6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이었는데 이 책은 종이책 기준으로 127쪽이다.
만만하다 싶었다.
주르륵 읽었다.
역시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다시 중간까지 읽다가 멈췄다.
몇 시간 지나서 그다음부터 읽으려는데 앞의 내용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몇 페이지 앞으로 갔는데 처음 보는 문장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이번에도 작품해설을 읽고 책의 첫 페이지부터 다시 읽었다.
그때서야 감이 잡혔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데 마지막 문장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게 나의 느낌이었다.
지난 5일 동안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책 속에 빠져 있었다.
늪에 빠진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싶다.
벽돌책들도 이렇게 어렵지는 않았는데 정말 읽기 어려웠다.
네 번째 책을 읽을까 하다가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하나같이 숨막히는 책들이다.
이번에는 다를까 했는데 역시나 똑같다.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절망감이 든다.
세상의 종말, 묵시록 이런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어쩌면 독서의 종말을 맞이하는 기분이 든다.
캄캄함에 갇혀 헤매거나 멍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는 기분이다.
책들의 내용도 그렇다.
인간성 상실, 희망 없음, 세상의 끝에 다다른 느낌이 든다.
아니, 끝이 다가오는 것 같은데 끝이 보이지 않는다.
계속되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왜 이런 기분이 들까?
"마침표가 없어서 그렇다!"
마침표가 있다면 거기서 한 매듭을 맺고 또 다른 매듭을 향해 나아갈 텐데.
이 책들에는 마침표가 없다.
아니. 마침표가 있기는 하다.
저어기 스무 페이지 지나면 그 끝에.
마침표는 끝을 표시하는 건데
마침표가 없으니 끝장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쩌면 작가인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그걸 노렸는지 모른다.
"내 책을 한번 읽는 자는 끝장날 거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노벨문학상 작품을 읽으며 기분 좀 내려했는데
노벨문학상 작품에서 절망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