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싯적에는 친구들보다 뭐든지 잘하고 싶었다.
공부는 물론이거니와 딱지치기, 자치기, 술래잡기, 공기놀이도 친구들에게 뒤지고 싶지 않았다.
달리기도 싸움도 남들보다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쉰 살이 넘도록 살아보니까 알겠다.
모든 면에서 잘하는 사람이 되기는 힘들다.
팔방미인을 꿈꾸지만 팔방미인은 마치 무지개처럼 가까이 갔다 싶으면 저만큼 멀어져 간다.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다재다능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에게도 약점이 있다.
아니 약점이 많다.
아킬레스가 발뒤꿈치에 화살을 맞았기에 그렇지 다른 곳에 화살을 맞았어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아킬레스가 모든 화살을 피했다고 쳐도 시간의 화살, 세월의 화살은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킬레스도 늙고 병들고 죽는 운명은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면에서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남들보다 잘하는 한 가지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토끼와 거북이가 달음박질을 하면 분명 토끼가 거북이보다 잘한다.
그런데 누가 늦게 가느냐는 게임을 하면 당연히 거북이가 토끼보다 잘한다.
가부좌 틀고 오랫동안 한자리에 앉아 있으면 도사라는 소리를 듣는다.
대단하게 여긴다.
그런데 아파서 침대에 오랫동안 누워 있으면 환자라는 소리를 듣는다.
불쌍하게 여긴다.
앉아 있는 게 힘들까 누워 있는 게 힘들까?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누워 있는 게 더 힘들 것 같다.
그렇다면 한자리에 오랫동안 누워 있는 사람도 도사의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오랫동안 한자리에 누워 있는 분들을 만나보면 알 수 있다.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보다 그분들이 인생의 깊이를 더 깊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병문안을 간다고 하는데 가 보면 헷갈린다.
그가 아픈 것인지 내가 아픈 것인지 잘 모를 때가 많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육상부였던 친구가 있었다.
운동도 열심히 안 해서 그런지 성적이 별로였다.
얼굴은 말끔했다.
키도 컸다.
공부는 영 아니었다.
어느 날 그놈이 나한테 충격적인 말을 해줬다.
“은석아, 너는 나보다 공부를 잘하니까 머리에 영어 단어나 수학공식 같은 것은 많이 들어가 있을 거다.
근데 너는 나보다 당구를 잘 못 치잖아.
그러니까 네 머릿속에 있는 것과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을 재보면 삐까삐까할 거야.” 그 말을 듣고 웃고 말았지만 엄청 충격을 받았다.
공부는 내가 그놈보다 잘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그놈이 나보다 잘하는 게 많다는 게 사실이었다.
책읽기 운동을 벌이다 보니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의 유발 하라리 교수를 알게 되었다.
나보다 나이가 그리 많지도 않은데 엄청난 책들을 썼다.
속이 뒤틀렸다.
그래서 유발 하라리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너는 써라. 나는 네가 쓴 책을 다 읽어 버리겠다.”
나이 오십이 넘어 보니까 남들보다 잘하는 게 별로 없다.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니고 쌓아 놓은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다.
뱃살이 나온 걸 보니 건강관리를 잘한 것도 아니고 내 이름이 박힌 책 한 권 내지도 못했다.
한때는 뛴다 난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긴다고도 할 수 없겠다.
이대로 잊히는 걸까 생각하니 기분이 씁쓸하다.
그래도 남들보다 잘하는 게 뭐 하나라도 없을까 찾아본다.
지렁이는 기어가는 재주라도 있는데 나에게는 뭐가 있을까?
부끄럽지만 남들보다 잘하는 하나가 있기는 하다.
그건 바로 책읽기이다.
한 달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돌아보면 34권의 책 목록이 적혀 있다.
누군가 나에게가 세상을 헛살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라고 한다면 나는 이 독서목록을 들이밀 것이다.
다른 것은 잘하지 못하지만 책읽기만큼은 남들보다 잘했다고 자랑하고 싶다.
지난 10월에도 34권을 읽었으니 대단하다고 나 자신을 칭찬하고 싶다.
306. <채털리 부인의 연인(상)>. 데이비드 허버트 로런스. 홍지웅, 홍예빈. 열린책들. 20251004
307. <채털리 부인의 연인(하)>. 데이비드 허버트 로런스. 홍지웅, 홍예빈. 열린책들. 20251004
308.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읽어야 할 대학, 중용>. 주자. 박훈. 탐나는책. 20251005
309.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 이해인. 필름. 20251005
310. <담론과 진실>. 미셸 푸코. 심세광, 전혜리. 동녘. 20251006
311.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우종영. 메이븐. 20251007
312. <나는 나뭇잎에서 숨결을 본다>. 우종영. 흐름출판. 20251008
313. <작가의 여정>. 트래비스 에버러. 김문주. 펜슬. 20251008
314. <온도계의 철학>. 장하석. 오철우. 동아시아. 20251009
315. <사탄탱고>. 크리스너 호르커이 라슬로. 조원규. 알마. 20251010
316. <큰 뜻을 품은 자여 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가>. 이근오. 모티브. 20251011
317. <버킷 리스트>. 나태주. 열림원. 20251012
318. <감정은 사라져도 결과는 남는다>. 이해인. 필름출판사. 20251013
319. <저항의 멜랑콜리>.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구소영. 알마. 20251013
320.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 나태주. 열림원. 20251013
321. <라스트 울프>.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구소영. 알마. 20251014
322. <아주 오래된 인생 수업>. 존 러벅. 박일귀. 문예춘추사. 20251014
323. <자연에게 말을 걸다>. 랄프 왈도 에머슨. 이송누리. 해밀누리. 20251014
324. <서왕모의 강림>.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노승영. 알마. 20251016
325. <아주 오래된 지혜>. 존 러벅. 박일귀. 문예춘추사. 20251017
326. <곤두박질>. 마이클 프레인. 최용준. 열린책들. 20251018
327.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존 러벅. 이순영. 문예출판사. 20251019
328. <인생이 막막할 때 책을 만났다>. 김형준. 행복에너지. 20251020
329. <폭력의 유산>. 캐럴라인 엘킨스. 김현정. 상상스퀘어. 20251020
330. <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 엘리어저 스턴버그. 조성숙. 다산북스. 20251022
331. <에로틱 세계사>. 난젠, 피카드. 김선식. 다산북스. 20251023
332. <커피 한 잔에 담긴 문화사, 끽다점에서 카페까지>. 이길상. 교유당. 20251024
333. <줄 서서 보는 그림의 비밀>. 이정우. 투래빗. 20251025
334. <붉은 굶주림-우크라이나 대기근, 기획된 종말>. 앤 애플바움. 함규진. 글항아리. 20251029
335. <그래도 여전히 인문학 인간>. 남승현. 픽셀앤플로우. 20251029
336. <참 괜찮은 말들>. 박지현. 메이븐콘텐츠. 20251030
337. <참 괜찮은 태도>. 박지현. 메이븐콘텐츠. 20251030
338. <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천선란, 윤혜은, 윤소진. 한겨레엔. 20251031
339. <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 버지니아 울프. 박신현. 교보문고. 2025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