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내 일상이 그렇다.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간단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전화도 있고 안부를 주고받는 전화도 있다.
업무적으로 중요한 사안을 의논하는 전화도 있고 횡설수설하는 전화도 있다.
휴대폰 액정에 송신자의 이름이 뜨는 순간 반가운 마음이 드는 전화도 있고 가슴이 콱 막히는 전화도 있다.
이름만 봐도 전화를 받으면 무슨 말이 오갈지 감이 잡힌다.
모든 전화를 친절하게 받지는 않는다.
나도 사람인지라 어떤 전화는 기쁘게 받지만 어떤 전화는 몇 번 망설이다가 받기도 한다.
정말 가끔 있는 일이지만 어떤 전화는 받지 말고 수신 차단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늘도 70대 후반의 어른으로부터 여러 통의 전화가 왔다.
세어 보니 8번이었다.
그중에서 내가 받은 전화가 3번이고 안 받은 전화가 5번이었다.
치매를 앓고 계시다는 얘기를 들었다.
본인으로부터 직접.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남편을 둔 분이셨다.
긴 투병 끝에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이를 앙다물고 사시는 듯했다.
외로움이 많으셨는지 노년에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셨다.
새 가정을 꾸리면서 멀리 떠나셨다.
한때는 가까운 이웃이었지만 이제는 만날 일이 없는 분이다.
그런데 1년에 한두 번 이렇게 전화를 하신다.
조카처럼 젊은 나에게 당신의 고민을 마음을 털어놓으신다.
즐겁게 잘 살고 있다고 하시면서도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하신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서 섭섭해하지 않을까 나에게 물으신다.
그렇다고 지금의 삶을 무르려느냐고 물으면 그럴 수 없다고 한다.
지금이 좋으니까.
자녀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지셨다.
서로 마음을 헤아릴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니 제삼자인 나에게 전화해서 자녀들의 소식을 물으신다.
오늘 3번 전화를 받았는데 했던 말을 똑같이 반복하셨다.
무엇이 즐거운지 어린아이처럼 밝고 통통 튀는 목소리였다.
내가 누군지 아냐고.
잘 살고 있다고.
당신의 자녀들을 잘 부탁한다.
나에게도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3번의 통화에서 3번의 똑같은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다.
치매를 앓고 계신 게 분명하다.
5번의 전화는 일부러 안 받았다.
그 5번의 전화를 받았다면 똑같은 이야기를 5번 더 했을 것이다.
내가 전화를 받는다 한들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넋두리처럼 쏟아놓는 말을 묵묵히 들어주는 것밖에 내가 할 일이 없다.
계속 전화가 울리길래 짜증이 나기도 했다.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인데 내가 왜 전화를 받아야 하나 갈등이 생겼다.
내가 신문고도 아닌데 왜 나에게 넋두리를 하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제는 만날 일도 없는 분이.
수신 차단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도로 차단 해제 버튼을 눌렀다.
왜 나에게 전화를 하셨을까?
사라져가는 기억의 끝을 붙잡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핸드폰 주소록에서 내 이름을 본 순간 가족들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의 투병과 죽음의 과정에 내가 곁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집안의 대소사에 내가 참석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생각하면 젊은 시절 가족들과 오순도순 지냈던 시절이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머릿속이 한 줄씩 지워지다가도 내 이름 앞에서 지우개가 걸리적거렸기 때문일 것이다.
70대 후반을 사는 게 어떤 것인지 나는 모른다.
아마 지우개를 들고 다니면서 사는 것 아닐까 싶다.
가까운 곳에 있는 것부터 하나씩 지우면서 사는 것.
그런데 지우개가 불량인지 잘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추억이라 불리는 것들 말이다.
인생은 추억을 만들고 추억을 되새기며 사는 과정인가 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누군가에게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불쏘시개 같은 사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