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장소에 가면 과거에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이 떠오른다.
어떤 말을 들으면 예전에 그 말을 들려주었던 사람의 얼굴이 생각난다.
어떤 냄새를 맡으면 오래전 그 냄새가 풍기는 분위기 속에서 주고받았던 이야기들이 기억난다.
연상작용이다.
어떤 하나가 또 다른 어떤 하나를 불러일으킨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소설 속 주인공은 마들렌 한 조각이 녹아 있는 차를 마시는 순간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쾌감을 느낀다.
그 맛과 향이 익숙하다.
언제 어디서 이런 맛과 향을 느꼈을까 그 기억을 더듬어 본다.
기억은 어렸을 적 스완네 집으로 주인공을 이끌어간다.
거기서부터 이야기는 장장 10권의 책에 걸쳐 전개된다.
마들렌 한 조각 때문에 펼쳐지는 이야기다.
이런 일은 소설에서만 우리의 일상에서도 일어난다.
우리는 삶의 어느 한순간에 제각각 마들렌 효과를 경험한다.
그게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12월은 마들렌 효과를 경험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12월이라는 말이 들리는 순간 나의 뇌세포들은 갖가지 연상작용을 일으키기 위해 달리기를 한다.
겨울, 방학, 크리스마스, 성탄트리, 카드, 감사, 송구영신, 제야의 종, 헨델의 메시아.
그 여러 단어 중에서도 가장 크게 와닿는 말은 ‘선물’이다.
성탄선물, 감사선물, 방학선물, 종강선물, 사랑의 선물 등 12월은 선물과 함께 지나가는 계절이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예수라는 선물을 주신 계절이 12월이니까 일 년 열두 달 중에서 12월이 가장 기쁘고 즐겁고 감사한 달이 된다.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을 받았으니까 나도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이 인다.
그 마음을 담아 크리스마스카드를 쓰고 선물을 보낸다.
그렇게 지난 12월을 지내왔고 앞으로의 12월을 맞이할 것이다.
놀랍게도 이번 12월을 시작하면서 놀라운 선물을 받았다.
그토록 찾았던 나즘 히크메트다!
튀르키예의 저항시인 나즘 히크메트, 얼마 전에 브런치스토리에 나즘 히크메트의 책을 구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교부문고에도 없었고 알라딘에도 없었다.
온라인 중고서적으로 두어 권 올라와 있었는데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 붙어 있었다.
판매자는 누군가 이 책을 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그랬으니까 원래의 가격보다 대여섯 배 많은 가격을 붙여 놓은 것이다.
그 책이라도 구매할까 하다가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혹시 출판사에서 다시 책을 찍어낼지 모르기 때문이다.
출판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책을 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불쌍한 문투로 부탁을 하기도 했다.
출판사 관계자로부터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좀 섭섭했다.
독자가 문의를 했으면 답은 해 주는 게 예의일 텐데 말이다.
아마 출판사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답장조차 못 하고 있을 거라 지레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기적처럼 내 손에 나즘 히크메트의 책이 들려졌다.
같은 사무실을 쓰는 새내기가 선물이라며 조그만 쇼핑백을 건네주고 갔다.
자기 와이프가 내 브런치스토리를 보고 수소문해서 찾아낸 책이라고 했다.
하! 이런 고마운 사람이 내 곁에 있었다니!
책 한 권 선물 받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가 바로 선물과 같은 사람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내 곁에 선물처럼 온 사람이다.
지금 이 지구 위에 85억 명이 넘는 사람이 있지만 내 곁에 있는 사람은 모두 한 사람씩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선물 같은 사람이다.
선물이 반갑고 감격스러운 이유는 세상에 나 하나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나를 위해 주어진 것은 나의 선물이다.
다른 시간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나에게 선물일 수가 없다.
지금 이 순간 나를 감싸고 있는 모든 것이 내 선물이다.
세상은 선물로 가득 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