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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를 잘 알려면 제주도에서 오래 살아봐야 한다

by 박은석


내 고향이 제주도라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이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고향이 제주도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제주도에서 나 같은 사람이 태어났다는 게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물론 말은 그렇게 하지 않고 “정말이요?” 정도로 한다.

하지만 그 얼굴 표정에 나타나는 미세한 변화를 내가 감지한다.

제주도로 놀러는 가지만 제주도 사람이 자기 주변에 있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표정이다.

제주도에는 사람도 별로 안 살 텐데 그 얼마 안 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표정이다.

그런가 하면 내 고향이 제주도라는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환해지면서 너무 좋겠다는 말을 연신 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제주도가 무슨 환상의 섬인 줄 안다.

피터 팬이 살고 있는 네버랜드인 줄로 착각한다.

한술 더 떠서 자기는 제주도에서 살아보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한때 신혼여행지로 제주도가 가장 각광받았던 때가 있었다.

내 기억에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신혼여행지는 단연 제주도가 으뜸이었다.

하긴 그때는 소시민들이 해외로 여행을 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꿈이었고 환상이었다.

비행기 한번 타고 싶은데 비행기 타고 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제주도였다.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지 제주도는 비행기 타고 가는 특별한 곳으로 생각한다.

들국화라는 남성 보컬 그룹의 최성원이 <제주도 푸른 밤>이란 곡을 썼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라고 노래했는데 그 노래를 들은 젊은이들이 마법에 걸린 듯 제주도로 떠났다.

그들은 아마 제주도의 밤은 푸른 밤일 거라고 생각했을 텐데 막상 제주도에서 마주한 밤은 시커먼 밤이었을 것이다.

노래 가사와 실제의 삶의 환경은 비슷한 듯 하지만 차이가 많이 난다.

그때 그들은 그걸 느꼈으려나?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제주도에서 1주일 살아보기, 열흘 살아보기, 한 달 살아보기, 1년 살아보기가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제주도를 더 깊이 알아보려는 그들의 노력과 실천이 가상하다.

돌담길을 걸어보고 과수원에서 밀감도 따 보고 갈중의(갈옷)를 입고 패랭이를 쓰고 제주 사람의 흉내를 내 본다.

그러면서 얻은 경험들을 모아 자기가 제주도를 많이 알게 되었다고 말을 하고 글을 쓴다.

그들의 말에 혼을 빼앗기고 그들의 글에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진짜배기 제주도 사람들은 시큰둥한다.

고작 1주일에서 열흘, 한 달이나 1년을 살아보고서 제주도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알 수는 있지만 그 안다는 것은 새발의 피 정도 아닐까?

맛집을 알고 관광지를 알고 올레길의 코스는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제주도 사람들이 왜 그런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런 관광지에서 어떤 눈물과 땀을 흘렸는지 알기는 힘들 것이다.




제주도를 알려면 제주도에서 길게 살아봐야 한다.

1주일이 아니라 한 달이나 1년이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살아봐야 한다.

섬사람의 마음이 느껴질 때까지, 먹을 게 없어서 쌀밥을 ‘곤밥’이라고 부르는 게 당연하게 여겨질 때까지, 소고기를 구하기 힘들어서 미역국에 돼지고기나 갈치를 넣어 끓여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때까지, 괸당(친척의 제주 방언)이 자신의 삶을 보호하기도 하고 옭아 묶기도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제주에서 오래오래 살아봐야 한다, 정현종 선생이 <방문객>이란 시에서 노래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사람만 그런 게 아니다.

제주도를 만나서 알아가는 것도 제주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만나는 것이다.

제주도를 알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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