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는 길에 하늘에서 눈꽃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올해 첫눈이다.
살짝 내리다가 그치겠지 생각하고 집에 들어왔다.
한 식간쯤 지났을까 아들에게서 밖에 눈이 많이 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설마 하며 밖을 내다보니 하늘에서 눈이 펄펄 내려오는 게 아니라 펑펑 내려오고 있었다.
벌써 길바닥에는 발자국이 패일만큼 눈이 쌓여 있었다.
아내를 졸라 밖으로 나갔다.
첫눈을 맞으며 동네 한 바퀴 돌아보자고 했다.
눈 속에 발이 폭폭 빠지는 기분이 좋다.
나보다 먼저 이 눈을 밟은 사람이 있다는 게 아쉽기는 했다.
발자국이 많이 나 있었다.
아직 눈이 그친 것도 아닌데 경비아저씨는 벌써부터 눈을 치우고 있었나 보다.
경비아저씨뿐만 아니라 몇몇 이웃들도 함께 눈을 치우고 있었다.
단지 앞 먹자골목으로 접어드니 내 점포 앞 눈은 내가 치운다는 마음인지 여러 사람들이 자기 점포 앞 눈을 치우고 있었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내가 내 일터의 눈도 치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지만 그 시간이면 모두 다 퇴근해서 건물이 텅 비어 있을 것이다.
건물 바로 앞 보행로로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닌다.
대단위 아파트 단지와 전철역 그리고 버스정류장 사이에 있기 때문에 평상시에도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이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 많은 사람이 지나가면서 바닥이 반질반질하게 굳은 눈으로 덮여 있었다.
창고에 가서 눈치우개를 두 개 들고 나왔다.
하나는 내 것, 하나는 아내 것.
이 얼마나 오랜만에 치우는 눈일까?
어렸을 때는 시골에 살았으니까 눈이 올 때마다 치웠다.
군 복무 때도 눈이 오면 제설삽과 빗자루를 들고 나가 눈을 치웠다.
군 전역 후 도시에 안착하며 살아가다 보니 내 손으로 눈을 치울 일이 없어졌다.
제설차량이 눈을 치우고 건물 관리하는 분들이 눈을 치운다.
관리하는 분에게 연락드릴까 하다가 밤시간이고 해서 괜히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연락드리지 않아도 눈 소식을 들으면 밖으로 나와서 치우실 분이다.
눈치우개의 사각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 뭉치씩의 눈이 쓸려나갔다.
인도 밖 차도로 밀어내고 또 밀어냈다.
눈치우개가 지나간 자리가 말끔해졌다.
20분 정도 지났을까?
역시 관리자께서 등장하셨다.
괜스레 미안해하는 눈치이다.
눈치우개 하나를 얼른 빼앗고 아직 눈이 소복이 쌓여 있는 쪽으로 발길을 옮기셨다.
이쪽은 자연스레 나의 구역이 되었다.
내친김에 길 건너 카페 앞쪽의 눈도 치워버리자고 했다.
할머니가 운영하는 카페인데 혼자서 눈을 치우기는 힘드실 게 뻔했다.
남 좋은 일 한번 할 거면 확실하게 하는 게 낫다.
돈 드는 일도 아닌데.
힘도 남아도는데.
유리창 안에서 내 모습을 지켜보시던 할머니가 고맙다며 차 한 잔을 건네주셨다.
기분이 좋다.
한 30분 눈을 치웠더니 길이 깨끗해졌다.
이 길을 지나면서 넘어질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청소도구를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마음이 흐뭇하다.
자기 가게 앞 눈을 치우던 사람들도 하나씩 작업을 마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눈을 치웠다고 해서 손님이 더 많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계산을 하면서 눈을 치우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자기 가게 앞을 지나가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눈을 치울 것이다.
순전히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눈을 치우게 한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눈을 내려주시는 이유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눈을 치워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함이 아닐까?
눈이 내리면 눈을 뭉치는 사람도 있고 눈싸움을 하는 사람도 있고 눈사람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보기 좋은 풍경들이다.
그중에서 가장 보기 좋은 풍경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눈을 치우는 풍경이다.
눈오는 밤에 가장 보기 좋은 풍경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눈을 치우는 풍경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