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삐삐, 쿵! 깜짝 놀랐다. 이게 뭐지? 뒤에 차량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자세히 보니 주차장 기둥을 들이받았다. 이상하다. 저 기둥이 언제 저기에 있었지? 분명히 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충분히 여유 있는 주차공간으로 보였다. 차에서 내려서 봤더니 주차 구역도 아니었고 차량을 주차할 만큼 넓지도 않은 곳이었다. 내가 뭘 본 걸까?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기둥은 분명히 그 자리에 있었다. 내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왜 있잖은가? 보이지 않는 고릴라라고. 미국의 심리학자 크리스토퍼 차리브스와 대니얼 사이먼스가 내세운 이론이다. 농구 경기 중간에 고릴라 탈을 쓴 사람이 지나갔는데 사람들은 경기에 집중해서 그랬는지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분명히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는데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주차장의 기둥이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내가 보지 못했던 것처럼.
기둥이 안 보였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핑곗거리이다. 후진 기어를 넣으면 내비게이션 화면에 자동차의 뒤쪽 상황이 뜬다. 사람이 지나가거나 장애물이 있으면 신호음이 삐삐삐 울린다. 사람이나 장애물이 가까이 있으면 삐삐삐 울리는 소리도 더 가빠진다. 그 소리는 나도 분명히 들었다. 삐삐삐삐 울리다가 쿵 하고 부딪혔다. 그런데 삐삐삐 소리가 울리는데도 나는 계속 후진 기어를 넣고 가속 페달을 밟았다. 백미러를 보면서 핸들을 여유있게 돌렸다. 운전병은 백미러만 보면서도 정확하게 주차를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내가 누군가? 기갑부대의 운전병 출신이다. 비록 전차 운전은 못했지만 자동차 운전에 대해서는 누구 앞에서나 기죽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 내가 주차장 기둥에 차를 박았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접촉사고를 냈다. 다른 사람들이 알까 봐 서둘러 보험사에 연락을 했다. 아무도 모르기를 바라면서.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할 때가 있다. 남들에게는 그렇게 위안을 준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는 그런 위안을 주기가 힘들다. 어쩌다가 내가 그런 실수를 했을까 자책만 든다. 왜 기둥을 못 봤을까? 왜 삐삐삐 소리를 들으면서도 내비게이션 화면을 쳐다보지 않았을까? 왜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고 가속 페달을 밟았을까? 그나마 다른 차량을 들이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어야 하는 것일까? 보험사에 연락을 하는데도 창피해서 혼났다. 기둥에 차를 박았다고 솔직하게 설명을 하는데 상담사는 다친 데는 없냐며 굉장히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아마 속으로는 킥킥 웃었을 것 같다. 바보 같이 가만히 있는 기둥에 왜 차를 박냐고 조롱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상담사가 웃고 속으로 조롱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바보처럼 주차장 기둥에 차를 박았으니까. 운전 경력이 수십 년이어도 어이없게도 주차장 기둥에 차를 박는다.
옛 어른들은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고 아는 길도 물어보라고 했다. 돌다리가 튼튼하단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아는 길을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다. 그래도 옛 어른들의 경험에 의하면 사람이 실수할 수 있으니까 두들겨보고 물어보라고 한 것이다. 성경에도 선 줄로 알거든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서 있다고 자신만만하지 말라는 말이다. 넘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조심하라는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적용할 말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적용시켜야 할 말이다. 세상이 굉장히 복잡해지고 있다. 자칫하면 두 눈 멀쩡히 뜨고 있는 상태에서 이것도 잃어버리고 저것도 잃어버리고 이것도 놓치고 저것도 보지 못할 수 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게 상책이다. 눈을 믿지 말고 귀를 믿지 말고 기억력을 믿지 말고 경험을 믿지 말자. 조심하고 또 조심하자. 조심하지 않으면 차도 상하고 몸도 상하고 마음도 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