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당하기 전에 빨리 화해하는 게 낫다

by 박은석


중국 무협영화를 보면 원수들이 찾아와서 아버지를 비롯한 온 가족을 살해한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아들은 그 모습을 가슴에 묻는다.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면서 어린아이는 성인이 된다. 그동안 스승님으로부터 무술을 배워 훌륭한 실력자가 된다.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으니 하산하라는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주인공은 산골을 떠나서 도시로 들어간다. 그의 앞에는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그간 배웠던 무술을 어린아이들에게 가르쳐줄 수도 있다. 젊고 건강한 몸이니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할 수도 있다. 젊은 나이이니 아리따운 여성을 만나 가정을 꾸릴 수도 있다. 그런데 주인공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주인공의 가장 큰 관심은 부모님을 죽인 원수를 찾아 복수하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원수를 만나고 자신의 근본을 밝히며 결투를 벌인다. 처절하게 복수한 후에 유유히 길을 떠난다. 그렇게 영화가 끝난다.




중국 무협영화의 끝부분에서 보여주지 않는 장면이 있다. 보복을 당한 그 나쁜 사람에게도 자식이 있다. 마루 밑에 숨어 있었는지,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 자식도 자기 아버지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영문을 모른다. 웬 청년이 와서 아버지를 죽이고 떠난 것만 안다. 그 청년이 떠난 후에 숨어 있었던 자식이 나와서 아버지의 시신을 안고 통곡을 한다. 이 죽음을 꼭 갚고야 말겠다고 다짐을 한다. 20년 전에 어린 주인공이 울부짖으면서 다짐했던 말을 이번에는 원수의 자식이 내뱉는다. 그래서인지 중국 무협영화는 2시간 동안 방영된 후에는 끝이 나야 하는데 끝나는 것 같지 않게 막이 내린다. 언제쯤이면 이 악순환의 인연이 끝이 날까? 두렵기는 하지만 한쪽 집안이 완전히 몰살된 다음에야 끝이 날 것이다.




우리는 1910년 8월 29일에 나라를 빼앗겼고 1945년 8월 15일에 광복을 맞았다. 34년 11개월 15일 동안 나라를 잃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혁명선언>의 첫 문장에서 “강도 일본이 우리의 국호를 없이 하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 생존적 필요조건을 다 박탈하였다.”라고 부르짖었다. 1910년 당시 조선의 인구는 약 1,300만 명이었고 일본은 5,000만 명이었다. 인구도 그렇거니와 과학 기술 면에서 군사력에서나 그 외 여러 면에서 일본은 조선의 경쟁상대가 아니었다. 일본이 매를 들면 조선은 종아리를 맞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었다. 눈물이 나도 어쩔 수 없었다. 가슴이 터져도 어쩔 수 없었다. 뺨을 맞아도 주먹질을 당해도 심지어 목숨을 잃고 죽어 나가더라도 왜 그러냐고 한마디 항변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마룻바닥 밑에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자식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말라고 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했다. 자존심은 개에게나 주고 목숨을 부지하라고 했다. 그러나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복수를 하자는 게 아니었다. 복수는 끝없는 복수를 만들어낼 뿐이란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복수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더 큰 그림을 그리자고 했다. 아이들은 서로 싸우다가도 한 놈이 미안하다고 하면 다른 놈은 괜찮다고 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이좋게 논다. 어른들도 그렇게 할 수 없겠냐고 물어보았다. 그렇게 사이좋게 살아보자고 외쳤다. 그게 <3.1 기미독립선언서>의 본심이다. 일제는 그것을 걷어찼다. 자기네가 힘이 세니까, 쪽수가 많으니까, 기술력과 국방력이 강하니까 밀어붙이려고 했다. 멍청한 짓이었다. 아이들은 계속 태어나고 화해하지 않으면 복수심은 계속 불타오를 게 뻔했다. 시간이 걸릴 뿐이지 복수는 반드시 이뤄진다. 그전에 빨리 사과하는 게 백번 천번 더 나았다. 요즘 벌어지는 이란을 둘러싼 일들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