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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Dec 16. 2020

나도 한번 대박 당첨되고 싶다


머피의 법칙이란 녀석은 생각하기도 싫지만 끈질기게 나를 따라온다.

이 녀석은 내가 선택한 것은 결과가 꼭 ‘꽝’이 되게 한다.

그러니까 내 인생을 배배 꼬아버리게 하는 말도 안 되는 법칙이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


내가 태어난 1970년대 초반은 우리나라에서 인구증가율이 가장 높았던 때이다.

1년에 100만 명이 넘는 아이가 태어났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가난한 집구석인데 자식들만 싸질러댄다며 정부가 난리 부르스를 췄지만 자식 농사가 인생 농사였던 시기에 먹혀들 리가 없었다.

급기야 정부에서도 극단의 방법들을 동원했다.

적국 방방곡곡에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를 붙여 놓았다.

남자들은 예비군 훈련을 빼 주는 조건으로 간단한 수술을 하게 했다.

자식이 셋이면 주택청약도 어려웠다.




그런 시기에 내가 태어났다.

위로 쪼르륵 딸만 셋이었던 집안에 처음으로 고추 달린 사내가 태어났으니 집에서는 경사 났다고 했나 보다.

오죽했으면 한여름에 맞이한 백일에 홀라당 옷을 벗겨놓고 그 잘난 물건 잘 나오게 기념을 사진을 찍고 온 동네에 다 뿌려댔다.

사춘기 시절에 나는 소꿉친구들 집에서 내 백일사진들을 회수하느라고 고생깨나 했다.

그 많은 동갑내기들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것은 엄청 치열하였다.


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니까 전국의 학교들에 교실이 부족하였다.

부랴부랴 신축 교사를 짓는 공사판이 벌어지고 한 교실에 다 집어넣지 못해서 오전반, 오후반을 나눠서 등교하게도 했다.

한 반에 학생수가 50명은 예사로 넘었고 많게는 70명에 이르기도 했다.

그러니 선생님들로부터 제대로 관심을 받지도 못했다.

지금 아이들을 보면 한 반에 30명도 안 되니 우리 때에 비하면 집중 교육이 이루어질 것만 같다.

참 부럽다.




100만 명이 대학입학시험을 치렀던 그 시절에 전국의 대학 신입생 모집인원은 2년제까지 다 합쳐서 20만 명이 살짝 넘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80만 명은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한 아픔을 가슴에 안고 살아왔다.

지금은 40만 명 조금 넘게 시험 보고 40만 명 정도 입학한다고 하니 세상 참 불공평한 것 같다.


그 경쟁을 뚫고 대학을 졸업하여 사회 초년이 되었을 때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IMF 구제금융으로 인생이 곤두박질을 쳤다.

선배들은 모아놓은 것이라도 조금 있었는데 우리는 완전히 개털이었다.

방송에서 보여주던 금 모으기 운동도 우리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우리 자신의 살 길조차 막막했다.




100만 명 중에서 살아남으려고 온갖 발버둥을 다 치면서 지내왔다.

남들보다 더 빨리 더 높이 오르려고 안간힘을 썼다.

전망 좋은 자리가 나오면 잽싸게 누군가 앉아버렸다.

나는 또 머피라는 패를 쥐고 있었던 것이다.


산에 오를 때 보면 고개 하나 넘을 때마다 경치 좋은 곳이 하나씩은 꼭 나온다.

거기서 그냥 머물고 싶은 유혹이 든다.

그런데 먼저 온 사람에 치이고 나중 온 사람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올라가게 된다.

내가 선택한 길은 또 고생하며 걷는 길이다.

아쉬워하며 한 발짝씩 옮긴다.

그런데 그렇게 한 자리 두 자리 다 놓쳤는가 싶을 때 나는 어느덧 나는 정상에 올라 있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싶을 때가 있다.

인생의 행운권이 내 번호만 비켜가는 것 같다.

주위에서는 다들 당첨되어 하나씩 얻어갔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번호를 쥐고 있다.

나도 한번 당첨되고 싶은데 아직까지도 나를 안 부른다.

머피가 나를 따라다니는 것일까?

아니면 혹시, 내가 쥐고 있는 이 번호가 최종 대박 나는 번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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