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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Dec 17. 2020

중딩인 딸이 연애하고 싶다고 한다


중딩인 딸이 연애하고 싶다고 한다.

자기 엄마랑 하도 오랫동안 킬킬거리면서 얘기를 하길래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냐고 했더니만 딸이 연애를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단다.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나야 해!”라며 웃어넘기면서도 가슴이 철렁한다.

내 딸도 다 컸다.

이팔청춘 열여섯이다.


이몽룡을 만난 춘향이의 나이가 그 나이 때이고 로미오를 만난 쥴리엣의 나이도 그 어간이다.

남자를 만나 사랑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어색한 나이가 아니다.

내 어렸을 적에 아버지는 족보를 꺼내놓고 고조할아버지는 아홉 살에 결혼하셨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하셨다.

그에 비하면 딸의 나이 열여섯이면 결코 그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나이다.

그래서 웃음 뒤에 걱정스런 마음이 뒤따라오는 것이다.

언젠가는 내 품을 떠나게 될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결혼하고서 6년 만에 기적처럼 낳은 아이다.

몇 번의 유산을 했었다.

수술실에 들어가서 아이를 안고 나오는 사람은 빈손으로 나오는 사람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무슨 말로도 위안이 안 된다.

주변에서 우리 부부 몰래 기도를 해 주신 분들도 많았다.

그 영향인지 생각지도 못했던 순간에 기적처럼 딸아이가 우리에게 찾아왔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잘 먹고 튼튼했다.

조리원에서는 이런 건강한 아이들을 모아서 빅 베이비 시스터즈를 결성하기도 했다.

더운 지방에 가서 살 때는 수박을 좋아했고 아빠 등에 업혀 수영을 한 후에 스파게티와 보라색 주스를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퇴근하고 현관에 들어서면 “아빠!”하며 달려와 안겼던 아이다.

자라면서 크게 아프지도 않았고 속 썩인 적도 없었다.

성격도 좋고 공부도 꽤 하며 그림도 잘 그리고 춤도 잘 춘다.

선생님들이 써 주신 가정통신문에는 칭찬하는 말씀이 가득하였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엄마 아빠에게 넓은 집을 사주겠다고 약속을 할 만큼 마음 씀씀이가 좋은 아이인데 이제 연애하고 싶다고 한다.

지금은 아니라고 타이르지만 머지않아 우리 부부는 딸의 연애담을 듣고 싶어 안달이 날 때가 올 것이다.

그 시기가 10년 후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 10년이 후딱 지나갈 것이다.

그때에는 정말 내 딸을 더 넓은 세상으로 보내야 할 것이다.

당연한 일인데 당연히 그래야 하는데 그러기가 싫다.

세상의 그 어떤 놈도 믿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딸에게 “남자는 아빠와 네 동생 빼고는 다 늑대야.”라고 말한다.

물론 딸은 귓등으로 듣고 흘려보내겠지만 아빠로서 나는 그렇게라도 발악한다.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럽게 잘 키웠는데 그 어떤 늑대 같은 놈이 덜컥 물고 간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도, 상상하기도 싫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엄한 말을 하고 두 팔을 벌려서 막아선다고 해도 딸은 언젠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연애를 할 것이다.

막아 선 내 두 팔 사이로 슝슝 빠져나가서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갈 것이다.

제 아무리 슈퍼맨 같은 아빠, 원더우먼 같은 엄마일지라도 딸을 막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기에 아주 오래전부터 딸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아마 첫돌이 되기도 전부터였을 것이다.

딸의 얼굴을 보는데 불현듯 내가 너무 부족해 보였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조아리기 시작했다.


“성격 좋은 사람 만나게 해 주세요. 사랑을 많이 베푸는 사람을 만나게 해 주세요.”


거창한 기도도 아닌 것 같은데 제발 이 기도는 꼭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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