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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Dec 24. 2020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 무서웠을까?


나는 참 겁이 많은 아이였다. 

말 잘 듣는 착한 사람을 선호했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부모님의 교육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른생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마치 큰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배운 종교교육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죄를 지으면 지옥의 불구덩이에 들어간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상상만 해도 끔찍했기에 어쨌든 나는 지옥에 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도 많이 했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착하게 살아서 나중에 꼭 천국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도 했다.


그래서인지 조금 삐딱한 사람을 보면 덜컥 겁이 났다. 

특히 술에 취해 벌건 얼굴로 비틀거리면서 다가오는 아저씨들을 길에서 만나면 잽싸게 도망치기에 바빴다. 

술 취한 아저씨가 정말 무서웠다.




서로 주먹을 휘두르며 싸우는 사람들도 정말 무서웠다. 

눈이 시퍼렇게 멍이 들고 얼굴이 부어오르고 코피가 터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엉겨 붙어 싸우는 모습은 몹시 싫었다. 

인상을 잔뜩 쓰며 큰소리로 질러대는 쌍욕도 너무 무서웠다. 

우리 집에서는 욕을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친구들 중에는 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녀석들도 있었고 툭하면 싸움박질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 녀석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유리병과 벽돌을 들고 서로 달려들기도 했는데 나는 보는 것만으로도 겁이 났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1학년 때 딱 한 번 싸운 것을 제외하면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누군가와 치고받으며 싸운 적이 한 번도 없다. 

내가 인성이 좋아서 친구들과 잘 지낸 것이 아니라 무서워서 차마 싸우지 못했던 것이다.




수학여행을 가면 유명한 사찰에는 꼭 들렀는데 그때마다 가슴이 요동을 쳤다. 

절에 들어가려면 좌우로 서 있는 네 개의 큰 조각상을 지나가야 하는데 그 사천왕들이 소름끼치도록 무서웠다. 

꼭 나를 노려보면서 “네 이놈!”하고 호통을 치는 것 같았다.

내 코에 익숙하지 않은 향냄새도 무서움의 기억을 떠올리는 데 한몫하곤 했다.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만 무서워하는 것 같아 누구에게도 무섭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아이들을 데리고 불국사와 석굴암을 간 적이 있다. 

다보탑과 석가탑의 전설을 공부하고 그 조각한 형태를 살펴보며 ‘어떻게 저렇게 정교하게 깎았을까?’ ‘저 무거운 돌을 어떻게 저렇게 단정하게 쌓았을까?’ 생각을 하다 보니 향냄새도, 사천왕상도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다.




그때는 그게 왜 무서웠을까? 

술 취한 아저씨가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모습, 친구들끼리 치고받는 싸움과 욕설, 사천왕상과 향냄새, 그 외에도 내가 무서워했던 것들이 정말 무서운 것이었을까? 

아니다. 알고 보면 전혀 무섭지 않은 것들이었다.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하는 술 취한 사람이 나에게 얼마나 해코지를 할 수 있었겠나? 

주먹다짐을 하던 친구들도 지나고 나면 어깨동무하며 함께 어울리지 않나? 

사천왕상의 누구인지 그 의미를 알면 오히려 친근하게도 느껴지고 향냄새도 계속 맡다보면 익숙해진다.


정작 내가 무서웠던 이유는 그 대상들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고? 

절대 아니다. 

그것은 무지에 대한 구차한 변명일 뿐이다. 

모르면 무서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무지했기에 나라를 뺏기고 인생을 송두리째 뺏겼던 아픔이 있다. 

그때 그게 무서웠던 이유는 우리가 무지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무서워하지 말자. 

겁낼 필요가 없다. 

우리가 알면 된다. 

아는 것이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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