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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an 16. 2021

너는 왜 그렇게 사니? 묻는다면


고등학교 3학년 늦가을 대학 진학을 위한 막바지 준비를 할 때였다.

갑작스레 사범대학으로 진로를 변경했다.

내 기억에 선생님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그 전에는 없었다.

국민학생 때는 과학자, 육군 대장 같은 생각을 했고, 집안이 기독교 가정인지라 목사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했다.

선생님 생각은 별로 안 했는데 갑자기 사범대에 가겠다는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

나의 말을 듣고서 담임선생님도 당황하신 기력이 역력했다.


고교시절 삼총사라면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자기 누나에게 내 얘기를 했다.

그의 누나도 대학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곧바로 누나에게서 연락이 왔다.

“은석아.

사범대는 남자들에게 인기가 없어 경영학과나 경제학과 쪽으로 가는 게 좋아.

이제 임용고시가 생기는데 그 시험 합격해야만 선생님이 될 수 없어.

교사 월급도 얼마 안 돼.” 누나는 정말 친절하게 알려줬다.




그랬다.

그때는 우리나라의 경제가 급상승할 때여서 경영대학 쪽이 인기가 많았다.

9월이 되면 국내 30대 기업의 입사설명회가 학교 운동장에서 진행되었다.

빼곡하게 들어선 텐트에서 면접을 보고 10월부터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대학 4학년의 기말고사는 취업했다는 말 한마디면 그냥 패스할 수 있던 때였다.

대학입학시험에서 떨어진 한 친구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공무원시험을 봤다.

그리고 9급 공무원에 합격한 후에 낮에는 일하고 밤 시간 만이라도 공부하려고 야간대학에 진학하였다.

포부가 큰 남자라면 사범대학이나 공무원시험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적어도 행정고시 정도에 도전하고 있다고 해야 괜찮게 여겨졌다.

그러던 때에 내가 사범대학을 지원한다니 주위에서 걱정 어린 시선으로 쳐다봤던 것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는 것이다.

월급이 적으면 별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거였다.




마음이 많이 혼란스러웠다.

아직 세상 물정을 알 수는 없었고 마음으로는 미래의 멋진 인생을 그리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건 다 환상이라며 꿈을 깨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때에 생물 선생님께서 교무실로 나를 부르셨다.

담임도 아니면서 나를 부르셨다는 것은 선생님으로서도 굉장히 눈치를 많이 보셨을 것이다.

선생님은 내가 사범대학 원서를 쓴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왜 그렇게 진로를 바꿨는지 인기 학과가 어떤 곳이니 그쪽으로 지원하는 것은 어떤지에 대해선 묻지도 않으셨다.


그러면서 “은석아! 선생은 아이들 보고 하는 거다.

돈 보고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짧은 말씀이지만 가슴에 팍 와 닿았다.

사실 그 선생님은 교무실에서 학벌이 제일 높은 분이셨다.

그런데 제주도 한구석의 학교에 오셔서 생물 선생님으로 조용히 계셨던 분이시다.

우리는 그 선생님이 왜 여기에 계신지 늘 궁금했었다.




선생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신 그 한 마디 속에 모든 대답이 들어 있었다.

왜 서울의 가장 좋은 대학을 나오신 분이 우리 학교 선생님으로 오셨는지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가르치길 좋아하셨다.

당신의 꿈을 이루는 것보다 아이들에게 꿈을 주는 것을 좋아하셨다.

그리고 내가 얼떨결에 사범대학에 지원한다고 하니까 내 마음을 잡아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사람을 봐야 한다. 아이들을 봐야 한다.”


지금은 선생님의 성함도 얼굴도 기억이 안 난다.

졸업앨범을 들춰봐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신 그 말씀은 잊을 수가 없다.

“돈을 보는 게 아니다. 사람을 보는 거다.”


비록 교사가 되지는 못했지만 선생님의 말씀처럼 내 인생은 사람을 보는 삶으로 점철되어 있다.

돈을 버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누가 나에게 “요즘 같은 세상에 너는 왜 그렇게 사니?”라고 묻는다면....

좋아서 그런다고 웃어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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