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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an 21. 2021

당신이 좋아하는 숫자는 무엇인가요?


하루 종일 숫자와 어울려 살아간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시계에 찍힌 숫자를 확인한다.

그다음에는 간밤 동안 휴대전화에 찍힌 메시지의 숫자를 본다.

전화가 걸려오면 받기 전에 먼저 내가 아는 번호인지 아닌지 분간한다.

은행이나 병원에 가면 대기표를 뽑고 모니터에 찍히는 숫자를 바라보며 기다린다.

엄연히 나에게는 고귀한 이름이 있지만 그 이름보다 손에 쥐어진 대기표의 숫자가 불린다.


자동차를 타면 의식하지 않더라도 앞에 있는 차의 번호판이 눈에 들어온다.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으면 모니터의 오른편 아래쪽에 찍혀 있는 시계의 지시를 따라 밥 먹으러 나가고 퇴근 준비를 한다.

저녁밥을 먹고서는 오늘은 몇 킬로나 쪘는지 확인하려고 체중계에 올라선다.

어제와 별 차이가 없지만 괜한 너스레를 떨고 밖으로 나와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하루의 운동량인 1만 보가 채워지기를 바란다.




0에서 9까지 열 개의 숫자가 조합을 이루어 나의 하루 24시간, 1년 열두 달을 통제하고 조율한다.

맥박, 혈압 그리고 온갖 건강정보가 다 숫자로 표시되어 안전하다느니 위험하다느니 알려준다.

숫자의 변화에 따라 얼굴 표정이 밝아지기도 하고 어두워지기도 한다.


운동선수들은 누구보다도 숫자에 대해서 민감하다.

1초의 시간, 1Cm의 길이와 높이, 1골, 1점에 따라서 당락이 결정되고 신기록도 세워진다.

전설적인 선수의 등번호는 다른 선수가 사용하지 못하도록 은퇴할 때 영구결번으로 선포하기도 한다.

그러면 그 번호가 영원토록 그 선수를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 축구팀에서 등번호 11번은 최고의 공격수를 의미한다.

차범근 선수의 등번호였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는 축구 황제 펠레의 등번호였던 10번이 가장 강력한 공격수의 번호가 된다.

그 번호를 등에 단다는 것만으로도 축구선수로서는 큰 영광이다.




종교나 관습에 따라서 좋은 숫자와 안 좋은 숫자를 구분하기도 한다.

동양에서는 숫자 4를 꺼린다.

‘죽을 사(死)’ 자와 음이 같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뿌리를 내린 서양에서는 13이라는 숫자를 피하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은 날이 13일이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하늘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미하는 3과 땅의 동서남북 사방을 의미하는 4가 합쳐진 7이나 두 수가 곱해진 12를 좋은 숫자로 여긴다.

중국인들은 ‘돈을 벌다, 발전하다’는 뜻을 지닌 ‘발(發)’ 자와 숫자 ‘8(八)’ 자가 비슷한 발음을 내기 때문에 숫자 8을 무척 좋아한다.


야구에서는 7회에 유독 점수를 많이 얻다 보니 ‘러키 세븐’이란 말이 만들어졌고, 8회에는 역전시키는 경우가 많아서 ‘약속의 8회’라고 부른다.

그래서 그 시간이 되면 더욱 집중을 하고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품고 선수들은 경기에 임하고 관중들은 응원을 한다.




나는 숫자 5를 좋아한다.

국민학교에 입학하고서 처음으로 받은 나만의 번호가 5번이었다.

학년에 반이 하나밖에 없었던 시골이었기에 1학년 때 얻은 5번은 6학년 때까지 이어졌다.

자연히 5번은 나의 번호였다.


그 후 어쩌다가 숫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나는 숫자 5를 먼저 점찍어둔다.

예전에는 통장 비밀번호를 5555로 정했던 적도 있다.

지금은 동일한 숫자를 반복할 수 없기 때문에 부득불 번호를 바꾸게 되었다.

그런데 5를 제외한 다른 숫자들은 자꾸 잊어버린다.

그래서 비밀번호를 재발급받는 일이 많다.

나에게 친숙하지 않은 숫자여서 그런 것 같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숫자 5가 올해부터 10년 동안 나를 따라다니게 되었다.

떼려야 뗄 수도 없다.

그냥 품고 가야 한다.

이 숫자가 제일 좋은 숫자이거니 하면서 기분 좋게 달고 살아야 한다.

나는 그렇게 살겠다.

그런데 당신, 당신이 좋아하는 숫자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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