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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만히 있는 하늘을 탓하는가?

by 박은석


열심히 노력했는데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할 때나 생각지도 못했던 불운을 겪을 때, 우리는 흔히 “하늘도 무심하시지...”라는 말을 한다.

처음에는 그냥 말 뜻 그대로 ‘하늘이 나에게 관심이 없구나!’라고 하다가 나중에는 ‘누가 작당을 하지 않으면 이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엄청난 규모의 행운권 추첨 행사에 참석했다.

사람들도 많았지만 진열된 상품들도 대단했다.

텔레비전, 냉장고도 있었는데 최고의 상품은 조선백자였다.

나는 ‘제발 하나만 걸려라’하는 마음으로 행운권을 손에 꼭 쥐었다.

그 당시 나의 번호가 244번 같은 경우였다.


사회자가 “이백! 사십! 사아~” 하자 내가 “와!” 하며 일어섰다.

그런데 그 순간 사회자의 입에서 “암!”이라는 말이 덧붙여졌다.

“이백사십사암(243)!”이었다.

그리고 조금 지나 이번에는 “이백! 사십~” 하기에 또 잔뜩 긴장했다.

사회자는 끝에 “오!”를 외쳤다.

‘245’였다.




그날의 행운권 추첨은 그런 식으로 나를 놀리는 것 같았다.

내 앞뒤는 물론 내 번호보다 10번 앞에도 10번 뒤에도 모두 당첨되었다.

내 주위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이 상품을 받았는데 나만 못 받았다.

되게 기분이 나빴다.

‘하늘도 무심하시지’라는 말이 속에서 튀어나왔다.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려고 일부러 행운권 추첨을 조작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 생각해 보니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헛웃음만 났다.

하늘이 무심한 것은 맞다.

만약 하늘이 개입한다면 행운권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작은 상을 받은 사람은 큰 상을 받은 사람 앞에서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고, 2등에 당첨된 사람은 1등에 당첨된 사람을 부러워한다.

그들도 모두 ‘아! 내가 저것을 얻었어야 했는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대로 하늘이 무심하다고 할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애꿎은 하늘만 원망해왔는지 모르겠다.

정작 보이는 사람 앞에서는 말 한마디도 못했으면서 제일 만만한 게 하늘이라고 하늘만 탓하였다.

하늘이 도와주지 않아서 안 되었고, 하늘이 나에게 억하심정이 있어서 운이 없었고, 하늘이 나에게 무심해서 안 되었다는 말을 습관처럼 했다.


하지만 하늘은 이 사람에게나 저 사람에게나 공평하다.

이 사람에게도 햇빛을 비추고 저 사람에게도 비춘다.

나에게도 비를 내려주고 다른 사람에게도 비를 내린다.

모두가 하늘 아래 사는 사람이기에 하늘은 모두를 품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대한다.

그런데 왜 나는 하늘이 나에게만 특별대우를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일까? 아직도 어린아이의 응석이 남아 있어서 그렇다.

내 뜻대로 안 되면 떼를 쓰고 소리 지르고 바닥에 드러누워서 발버둥을 치는 그 유치한 모습을 아직도 벗어버리지 못했다.




하늘이 무심하다는 말로 신세타령이나 하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나 아깝다.

행운권?

그런 것에 당첨되지 못했어도 살아오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누군가의 도움, 힘, 빽, 낙하산?

그런 것들이 없었기에 오히려 나 스스로 실력을 늘려야만 했다.


모든 것이 잘 갖춰진 환경에서 위대한 일을 이룬 위인들은 거의 없다.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랑하는 이를 잃고, 젊은 나이에 불치병에 걸리고, 건강이 약하고,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시대가 암울한 상황을 처했을 때 위인들도 하늘을 탓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곧바로 자신들의 일을 하였다.

아픔이 컸기에 더 독한 마음을 품었고,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여겼기에 어떻게든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다.

그 결과 자신도 상상치 못했던 위대한 일을 이루게 된 것이다.

하늘이 우리에게 무심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늘은 언제나 우리를 돕는다.


하늘이 우리에게 무심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늘은 언제나 우리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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