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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Feb 05. 2021

내가 중요하다면 중요한 일이고 특별하다면 특별한 일이다


이틀 연속 비행기 사고를 당하고서도 멀쩡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니 그렇게 특별한 사고를 당할 수도 있을까? 

그런 경우가 있었다.

그것도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노인과 바다>, <킬리만자로의 눈> 등 주옥같은 작품을 펴낸 어니스트 헤밍웨이이다.


그는 기골이 장대했고 수영과 권투 등 운동도 잘했다.

그런 그가 부인과 함께 아프리카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아마 맹수들을 제압하고 열대의 땅을 정복하는 자신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우간다의 머치슨 폭포로 가기 위해 소형 비행기에 올랐다가 그만 조종 실수로 비행기가 전선에 걸려 강물로 추락했다.

다행히 뱃사람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는 그다음 날에도 비행기를 탔는데 이번에는 화재가 나는 바람에 급하게 조종실 창문을 깨고 불타는 비행기에서 탈출하였다.




그 두 번의 사고로 그는 온몸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고 여러 장기가 파열되고 왼쪽 눈까지 실명당했다.

그런데 이 사고 소식이 사람들에게 전해지면서 엉뚱한 소문이 덧붙여졌다.

미국에서는 기자들이 사실 확인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헤밍웨이가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는 기사를 내고 말았다.

신문을 보고 큰 충격에 빠진 헤밍웨이의 친구들은 그의 유해라도 찾으려고 부랴부랴 우간다로 날아왔다.


그런데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그들 앞에 살아 있는 헤밍웨이가 나타난 것이다.

슬픔에 겨워 잔뜩 눈물을 흘릴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잔치를 벌이게 된 것이었다.

헤밍웨이는 샴페인을 터뜨렸고 친구들은 헤밍웨이의 이야기가 실린 신문기사와 자신들이 준비한 추도사를 읽으며 마음껏 먹고 마셨다.

비록 불행한 사고를 당했지만 그로 인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 헤밍웨이는 그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여겼다.




헤밍웨이의 인터뷰 내용들을 모은 책 <헤밍웨이의 말>에는 그때의 경험에 대해서 언급한 말이 실려 있다.

“분명 불타는 비행기에서 추락하는 건 훈련된 작가에게는 소중한 경험입니다.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순식간에 배우죠. 그 경험이 쓸모 있을지는 생존에 달려 있어요.” 

그는 모든 순간이 다 의미가 있다고 여겼다.

살아 있으면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서 부상을 당한 경험은 <무기여 잘 있거라>를 쓸 때 도움이 되었고, 쿠바의 바닷가에서 살았던 경험은 <노인과 바다>에 도움이 되었다.

아프리카에서의 경험은 당연히 <킬리만자로의 눈>에 도움을 끼쳤다.

아무리 글을 잘 쓰고 말을 잘하는 사람일지라도 이야깃거리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고 만져본 것들을 소중히 여길 때, 그런 경험들이 쌓여서 위대한 작품이 탄생되는 것이다.




대학생 때 <하얀전쟁>의 작가 안정효 선생의 특강을 들은 적이 있다.

중요한 내용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사소한 것 하나는 아직도 생생히 떠오른다.

선생이 조그마한 수첩을 꺼내고서는 자신은 언제 어디서나 보고 들은 것 중에서 인상에 남는 표현을 그 순간에 적어둔다고 했다.

‘시장 바닥에 앉아 있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보니’와 같은 말을 적어두면 그런 말들이 모여 소설의 재료가 된다고 했다.


이틀 연속 비행기 사고를 당하는 것은 매우 특별한 사건이고 좋은 이야깃거리이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 특별한가? 아침밥을 먹다가 내 숟가락에 올라온 밥알이 몇 톨인지 한 번 세어본다면 그것도 특별한 사건이 될 것이다.

쓸모없는 일이라고?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쓸모 있게 될 수도 있다.

사소한 일? 

그런 것은 없다.

내가 중요하게 보면 중요하고 특별하게 보면 특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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