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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Feb 20. 2021

나를 볼 수 있는 거울이 필요하다


사거리 신호대기 중이었는데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었다.

1초, 2초, 3초.

내가 인지하지 못한 몇 초가 지나갔다.

여지없이 뒤에서 “빵~!”하는 경적음이 울렸다.

순간 당황하여 부리나케 기어 변속을 하고 가속기 페달을 밟았다.

내가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낯선 지역에서 길을 헤매다 보면 역시나 뒤에서 참지 못하고 울려댄다.

그리고 내 옆으로 지나가면서 뭐라고 한소리 한다.

한번 맞받아치고 싶지만 꾹 참는다.

그 사람이 바쁜가 보다 생각한다.

정말 바쁜 것인지 아니면 분노 조절이 안 돼서 그러는 것인지는 도통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도 다짜고짜 나에게 뭐라고 한마디 하면 나 또한 참기가 쉽지 않다.

누구는 감정이 없나?

몇 년 전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분노하라>라는 책도 있는데 그 제목처럼 억울한 일을 당할 때는 마음에 묻어두는 것보다 밖으로 표출하고 싶어진다.




그래도 삼사일언(三思一言)이라고 말 한마디 하기 전에 적어도 세 번은 생각해 보는 게 좋겠다.


첫째로, 정말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상대방이 나에게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이유가 있다면 분명 내가 알게 모르게 잘못했을 수 있다.

내가 원인을 제공해서 상대방의 기분을 언짢게 했다면 그 사람의 행동을 탓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둘째로, 내가 잘못하지는 않았지만 상대방이 오해를 사게 만든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유 없이 사람이 달려드는 일은 거의 없다.

내가 잘못한 게 없음에도 상대방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면 나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을 소지가 많다.

그러므로 그 오해를 먼저 풀어주어야 한다.


셋째로, 상대방이 도저히 이성적으로 대할 수 없는 독특한 사람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그 사람을 상대할 필요가 없다.

그냥 피하는 게 낫다.




조선시대 최고의 지성인이라 할 수 있는 율곡 이이는 <격몽요결(擊蒙要訣)>이라는 교육서에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방을 받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자세히 가르쳐주고 있다.


“누군가 나를 비방한다면 스스로 반성해 보아야만 한다. 실제로 그런 비난을 들을만한 행실이 나에게 있었다면 스스로 꾸짖어서 거리낌 없이 고쳐야 한다.” 

“만일 나의 과실이 아주 작은데도 그 사람이 과장하고 덧붙였다면, 비록 그의 말이 지나치긴 해도 비난받을만한 싹이 나에게 있는 것이니 역시 나의 잘못을 가차 없이 끊어버려서 한 터럭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만일 나에게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그 사람이 헛된 말을 꾸며댄 것이라면, 그는 망령된 사람일 따름이니 그 망령된 사람과는 말할 가치조차 없다. 또한 그런 종류의 헛된 비방은 귓가를 스치는 바람이나 허공에 지나가는 구름과 같은 것이므로 상관할 일이 아니다.”




과연 대학자이자 선비다운 가르침이다.

나를 먼저 성찰하라는 말이 가슴에 콕 찔린다.

덧붙여서 율곡은 남에게 비난을 받지 않는 비결이 두 가지 있다고 하였다.

그 하나는 누가 뭐라고 하든지 부지런히 자신을 수양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변명하지 않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바로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방법이다.

아! 그런데 이 두 가지를 지키기가 너무 어렵다.

율곡의 가르침은 활자로 박혀서 내 눈앞에 보이는데 그렇게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율곡의 글귀는 자연스럽게 읽히고 그 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데 나는 그렇게 살아지지가 않는다.


우리의 눈은 밖으로 나와 있어서 세상은 잘만 보지만 정작 나 자신을 보지는 못한다.

내 얼굴도 못 보고 등짝도 못 본다.

마찬가지로 나의 언행심사도 자꾸 밖으로만 고개를 돌린다.

나를 들여다보지 못한다.

나를 볼 수 있는 거울이 필요하다.

마음을 볼 수 있는 거울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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