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성큼 봄이 다가왔다.
꽃샘추위가 오기만 해 봐라 잔뜩 기다리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봄이 와버렸다.
엊그제와 비슷하게 도톰한 옷을 입고 나섰는데 땀이 배어나고 거추장스러워졌다.
계절 가는 줄 몰랐는데, 빼앗긴 세월이라고 기대도 안 했는데, 나의 생각이 어떻든지 봄은 자기가 들어설 때를 알고 이렇게 찾아왔다.
어쨌든 반갑다 봄아!
‘봄’은 그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다.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묘한 흥분이 일어난다.
무슨 일이든 한번 도전하고 싶은 충동이 인다.
통통 튀어 오르고 폴짝폴짝 뛰어오르고 싶은 마음이 분다.
또 봄이라는 말을 들으면 얼음이 녹으면서 맑은 물이 졸졸 흘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푸석푸석 말랐던 대지가 연초록 싹을 틔우고 겨우내 목말랐던 짐승들도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난다.
그래서 영어로 봄을 스프링(Spring, 튀어 오름, 샘물)이라고 하는가 보다.
‘봄’이라는 말은 ‘보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눈을 떠서 천지만물을 둘러보고, 먼 곳을 바라보고 가까운 곳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볼 수 있어서 나의 위치를 알게 되고, 볼 수 있어서 아름다움도 알게 된다.
가만히 눈을 감아도 우리는 볼 수가 있다.
내 마음에는 눈을 뜨면 볼 수가 없고 눈을 감아야만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세상이 있다.
꼭 두 눈을 통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볼 수가 있다.
손으로 만져서 볼 수 있고 코로 냄새를 맡아서 볼 수 있고 귀로 소리를 들어서 볼 수도 있다.
우리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는 다 눈이 하나씩은 들어 있어서 몸의 어느 부분으로든 다 볼 수가 있다.
뒤통수에는 눈이 없으니까 뒷담화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우리는 뒤에서 누가 무슨 짓을 하는지 너무나 잘 보고 있다.
그리고 오래 살아보면 더 잘 볼 수 있다.
나이가 더해지는 만큼 더 크고 더 넓고 더 깊은 것을 볼 수 있다.
‘봄’이라는 말 중에서도 가장 듣기 좋은 봄은 생명을 얻는 ‘봄’일 것이다.
어느 가정에 아기가 태어났을 때 우리는 ‘아들을 보았다’, ‘딸을 보았다’라고 한다.
‘봄’은 생명의 단어이다.
그 갓난아기를 보면 누구나 입꼬리가 올라간다.
웃음이 나온다.
목소리가 높아진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생기고 팔 근육도 좋아진다.
아기를 본 순간 엄마는 더 이상 가녀린 여성이 아니다.
업고 안고 들쳐메고 못된 것들로부터 아기를 지키는 든든한 보호자가 된다.
아기를 보면 집안도 밝아진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이 굴러들어왔다며 좋아한다.
먼지 하나라도 묻히지 않으려고, 티끌 하나라도 닿게 하지 않으려고 고이 싸서 손에서 손으로 애지중지하며 건네준다.
생명 하나 본 것뿐인데 사람들의 입에 호들갑이 늘었다.
말수가 많아졌다.
굳게 감추었던 지갑도 손쉽게 열린다.
돈을 내서라도 보고 싶어 한다.
보는 것 앞에 아까울 게 하나도 없다.
인생의 모든 순간은 다 보는 시간이다.
우리는 보면서 꿈을 꾸고 보면서 닮아가고 보면서 성장하며 보는 대로 살아간다.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진다.
좋은 것을 보는 사람이 있고 안 좋은 것을 보는 사람이 있다.
안 좋은 상황 속에서도 좋게 보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좋은 상황이라도 안 좋게 보는 사람도 있다.
한 번 보는 것은 우연이지만 두 번 보면 습관이고 세 번 보면 삶이 된다.
그 사람이 보는 것이 곧 그 사람의 인생이다.
실패와 절망, 좌절과 암울한 현실만을 바라본다면 세상은 온통 우울한 공간으로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기쁨과 희망, 기대와 밝은 미래를 바라본다면 세상은 무척 아름다운 곳으로 보인다.
새싹은 단단한 아스팔트를 뚫고도 돋아난다.
마른 나뭇가지에서도 새순이 나온다.
봄이 찾아온 것이다.
지금 나의 봄은 어디쯤 왔을까?
눈을 들어서 나의 봄을 맞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