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Mar 10. 2021

플라톤의 행복의 조건에 나를 대입해 보면


잊을만하면 한 번씩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다.

그중의 하나는 ‘나는 지금 행복한가?’ 하는 생각이다.

잘살고 있냐고 스스로 물어본다.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것인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자신의 직업이나 형편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나온다.


김이설 작가의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이란 소설에서는 시인이 되기를 꿈꾸며 좋은 시를 베껴 쓰는 30대의 미혼 여성이 등장한다.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 때문에, 공부 잘했던 여동생의 뒷바라지 때문에, 자신의 재능과 성격 때문에 똑 부러지게 살아오지 못했다.

연애도 제대로 못했다.

자신의 인생은 불행의 연속이라고 늘 생각했을 것이다.

시인으로 등단만 한다면 행복할 것 같았다.

그런데 동생의 이혼과 조카의 육아,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 봉양, 집안 살림살이가 그녀를 가만두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떠나고 싶은데 여전히 정류장이다.




책을 읽으면 그냥 먹먹해진다.

현실은 텔레비전 막장드라마처럼 해피엔딩이 아니다.

치열한 전쟁터 같다.

거기서 도망치려고 짐을 싸고 나오기는 했는데 정류장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서성이고 있는 것 같다.

주위 사람들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며 사는데 나만 미련곰탱이처럼 양보하고 희생하며 살아온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사는 것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행복은 내가 살고 있는 것과 반대로 살면 돼!”라며 호통을 치고 싶다.


행복이란, 말만 하면 집안일 다 처리해주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여유 있는 시간에 백화점에 가서 원하는 대로 물건을 사들이는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막상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뉴스에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들도 뭐가 불만인지 전혀 행복하지 않아 보인다.

도대체 저런 환경에서 뭐가 불만이고 뭣 때문에 불행하게 사는지 모르겠다.




또 잊을만하면 떠오르는 플라톤의 행복론 5가지가 있다.

이 항목들에 현재 나의 모습을 집어넣어 보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온다.


첫째는, 먹고 입고 살고 싶은 수준에서 조금 부족한 만큼의 재산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렇다.

‘조금’이라는 단어에 정도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둘째는,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용모이다.

내가 그렇다.

못생긴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잘생겼다고 할 수는 없다.

셋째는, 사람들이 나의 진면목을 절반 정도밖에 알아주지 않는 것이다.

내 마음이 그렇다.

왜 사람들이 나를 몰라주는지 모르겠다.

넷째는,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이다.

내가 그렇다.

저질 체력은 아니지만 주변에 운동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다섯째는, 내 말을 듣고 절반은 손뼉을 치지 않는 나의 말솜씨이다.

딱 나의 모습이다.

내 말을 즐겁게 듣는 이가 있는가 하면 내 말을 듣지 않는 이도 있다.




분명, 플라톤이 말한 행복의 조건에 나를 대입해 보면 나는 행복하고 행복하고 행복해야 할 사람인데 왜 그렇지 못할까?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에 대입해 보면 나는 집도 있고, 자동차와 컴퓨터도 있고, 대학도 졸업했고, 하루 세끼 밥을 먹고, 집에 동전도 굴러다니니까 분명 100명이 사는 마을에 상위 5% 안에는 들어오는 사람이다.

그런데 행복도 상위 5%인가 물어보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다.

어디서 뭐가 잘못된 것일까?


플라톤이 정작 얘기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다.

행복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손에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재산, 용모, 명성, 체력, 언변 모두 잠시 있다가 없어지고 높아졌다가 낮아진다.

그런 것들로는 행복이 유지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차라리 조금 부족한 게 낫다.

행복은, 보이지는 않지만, 잡을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우리의 마음에 있다.

마음에.


매거진의 이전글 '그걸 몰랐었네' 인정하며 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