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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pr 08. 2021

밥 잘 먹고 뚱딴지같은 생각을 한다

 

늦은 시간에 점심식사를 하게 됐다.

하루 일정이 꽉 짜여 있는데 식사가 늦으면 그만큼 휴식시간도 짧아진다.

일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쉬지 못하면 그 좋아하던 일도 싫어진다.

시간을 뺏겼다는 억울함이 커서 그런지 밥이라도 잘 먹자는 생각이 들었다.

봄나물도 먹고 싶고 고기도 먹고 싶고 생선도 먹고 싶었다.

이럴 때 찾아가기 딱 좋은 곳이 한식 뷔페이다.

짧은 점심시간에, 저렴한 가격으로 여러 음식을 골고루 맛볼 수 있는 집이다.

어차피 혼자 먹는 점심식사이니 남들 눈치를 살필 필요도 없다.


둥그런 접시에 한 주걱 밥을 푸고, 제육볶음도 듬뿍, 상추와 쌈장, 잔치국수, 당면, 김치, 고사리, 도라지, 달래, 미나리, 조기 한 마리...

얼마 안 돌았는데 벌써 접시에 음식이 수북해졌다.

된장국 한 사발 뜨고 자리에 앉아서 흡입하듯 먹었다.

소화에 좋다는 식혜 한 사발 먹고 식당을 나서는데 포만감이 몰려왔다.

잘 먹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오후 시간 내내 속이 불쾌했다.

너무 많이 먹은 것이다.

소화에 좋다던 식혜는 아무 효과를 못 냈다.

그나마 흑임자죽과 샌드위치를 안 먹어서 다행이었다.

뻔히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은 했었다.

한두 번 경험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은 음식을 보는 순간 사라져버렸고 허기진 배는 많이 먹으라고만 부채질을 했다.

그 결과는 또 후회막급이다.

늦은 점심식사를 하게 되어서 그 기분을 만회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불쾌한 감정을 저녁까지 달고 다니게 되었다.


현대인이 겪게 되는 성인병의 대부분은 잘못된 식습관 때문이란다.

너무 잘 먹어서 탈이라는 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먹을 것 앞에만 서면 조절이 되지 않는다.

‘조금만 먹어야지’ 작심을 하면서도 막상 먹고 나서 빈그릇을 보면 저걸 한 사람이 다 먹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때도 있다.

그만큼 우리의 배는 위대하다.




먹지 않고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의 양도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고 있고 그중에서도 10억 명 이상은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못 먹는다고 하는데 나는 너무 많이 먹어서 힘들어한다.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갑자기 단테의 <신곡> 생각이 난다.

단테가 지옥을 둘러보았는데 음식에 너무 욕심을 냈던 사람들을 보았다고 했다.

쉽게 생각하면 과식하면 지옥 간다는 경고였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 지옥의 문턱까지 갔다가 기적적으로 돌아온 것이다.


‘뭘 먹는 것 가지고 그렇게까지 생각하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굶주리고 있는 사람이 내가 먹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처음에는 부러울 것이다.

그러다가 점점 그 부러움은 나와 자신 사이의 불평등으로 바뀌고 분노심이 솟구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이런 불평등을 만든 세상을 뒤엎으려는 폭력으로 분출하게 된다.




단테가 소개한 교만, 질투, 분노, 게으름, 욕심, 탐식, 성욕의 7가지 죄악들 모두 처음에는 미미한 상태로 시작되었다.

아니 처음에는 좋게 출발했을 것이다.

적당한 정도의 잘난 체하는 것은 자신감을 갖게 한다.

긍정적인 질투는 창조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는 분노할 수 있다.

때로는 게으른 것이 재충전이다.

욕심은 희망이 되기도 한다.

식욕이 있어서 잘 먹어야 건강할 수 있다.

성욕은 가장 본능적인 욕구이자 인류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


이렇게 우리 삶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들인데 그것들이 죄악이 되는 순간이 있다.

나 자신만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때이다.

그게 물리적으로든 심정적으로든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고 속상하게 하면 죄악이 된다.

밥 잘 먹고서 무슨 뚱딴지같은 생각을 하냐고?

밥 먹는 사소한 일을 할 때조차도 다른 사람들을 좀 생각하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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