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본능은 누군가 자기를 떠받쳐주고 높여주면 좋아한다.
남들보다 좀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서 대접받기를 꿈꾼다.
그런 게 성공한 인생이라고 추앙한다.
그런데 높은 자리에 올라 있는 사람들이 가끔은 미친 척 낮은 자리로 내려오는 일들을 벌인다.
세계적인 연주자가 지하철역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연주를 해주고, 아무도 몰래 담벼락에 기가 막힌 벽화를 그려놓고 사라지기도 한다.
일평생 모은 재산을 좋은 곳에 써달라며 흔쾌히 기부하는 사람도 있고, 다재다능한 팔방미인인데 자신의 재능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쓰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도대체 그들의 뇌 구조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붙잡아서 뇌를 열어볼 수도 없다.
그냥 나 혼자서 상상만 할 뿐이다.
결론을 내리면 그들은 제정신이 아니다.
제정신이라면 그렇게 손해 보면서 살 수가 없다.
남 좋은 일만 하는 바보 같은 짓이다.
아! 가끔 그렇게 제정신이 아닌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사진 찍을 때이다.
순진해서였는지 뭘 몰라서였는지 나는 해마다 봄이 되면 대통령도 농사를 짓는 줄 알았다.
9시 뉴스에 모내기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큰 기업의 회장님도 시장에서 떡볶이, 순대, 오뎅을 먹는 줄 알았다.
시장 아주머니가 주는 것 받아먹으면서 활짝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한 장의 사진 쇼라는 사실은 한참 후에나 알았다.
그전까지는 그 사진 한 장에 감동을 받았었다.
‘그래! 나중에 성공해서 저렇게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야지!’ 하는 다짐도 했었다.
심지어는 복권에 당첨되면 그중에서 일부는 사회에 환원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쓰겠다는 생각도 했다.
정말 천만다행인 게 내가 복권을 사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샀다면?
당첨되었다면?
그때는 끝장이었을 것이다.
나라는 사람의 진면목이 여실히 드러났을 테니까 말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보면 2천 년 전에 살았던 로마인들에게서 독특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로마는 방대한 땅을 점령하고 수많은 나라와 부족들을 지배하면서 피정복민들을 노예로 삼았다.
그런데 전쟁을 벌일 때 전쟁 포로와 노예들을 동원하지 않았다.
오직 로마인들로만 부대를 조성하였다.
가끔 로마인이 아닌 경우도 있는데 그들은 곧 로마인이 될 사람들이었다.
쉽게 말해서 주민등록증만 발급받지 못했을 뿐이지 뼛속까지 로마의 사고방식이 깃들어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전쟁 중에 로마에 포로로 붙잡혀 온 사람들과 노예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지켜보기만 했다.
전쟁으로 목숨을 잃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이 제일 안전했다.
그런데 로마 사회는 그렇게 자신의 안전을 택한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철저히 로마를 위해서 목숨 걸고 싸우는 사람들 편에 섰다.
전쟁에는 수많은 물자가 동원되어야 하고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국가 재정만으로는 감당하기 벅차다.
그럴 때 로마에서는 귀족들이 전쟁 비용을 선뜻 내놓았다.
패배하면 돌려받지도 못하고 집안 망하게 될 텐데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평상시 돈깨나 있다고 거드름 피우면서도 그런 때 입다물고 있으면 로마 사회에서는 생매장당하기 딱 알맞았다.
나 혼자 잘살면 된다는 사람은 철저히 혼자 살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그를 친구로 대해주지 않았다.
공부해서 남 주냐는 말은 로마에서는 할 수도 없었다.
공부하면 당연히 남에게 주어야 했다.
그렇게 로마인들은 희생을 치른 만큼 존중받는 문화가 사회 곳곳에 뿌리내려 있었다.
로마인들을 향해서 미친 짓하며 살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가진 자의 책임이고 특권이고 명예라 생각했다.
새삼 로마인들처럼 미친 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