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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pr 26. 2021

나무처럼 사이좋게 살아야 한다


연초록색 잎사귀들이 나무를 잔뜩 덮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햇빛을 더 받으려고 가지들은 한껏 기지개를 켠다.

‘이 지역은 내 영역이야!’ 외치는 듯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쪽 나무와 저쪽 나무가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로 약속이나 한 것 같다.

가지가 뻗어가고 잎이 무성해져서 햇빛을 독차지할 것 같은데 절대 그러지 않는다.

옆에 있는 나무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그래서 깊은 숲속에서도 머리를 들고 하늘을 보면 나무들 사이로 파란 하늘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게 다 수관기피현상(樹冠忌避現狀, Crown Shyness) 때문이다.

나무의 꼭대기 부분은 잔가지들과 잎들로 무성한데 마치 버섯머리 모자를 쓴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 부분을 나무의 왕관, ‘수관(樹冠)’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수관기피현상이란 이쪽 나무의 수관과 저쪽 나무의 수관이 서로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나무들이 서로 넓은 공간을 차지하려고 수관을 넓힌다면 자연히 이웃 나무의 수관과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 그 겹친 부분은 옆 나무 때문에 햇빛을 받지 못하고 광합성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강한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그 맞닿은 부분은 서로 상대방을 찌르는 창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면 가지가 부러지고 심하면 몸통도 상할 수 있다.


나무 입장에서는 애써서 가지를 뻗어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하려 했지만 오히려 더 큰 손해만 입을 뿐이다.

전혀 도움이 안 되고 괜히 에너지를 낭비한 꼴이 되고 만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나무들은 더 넓게 자라려는 본능을 절제하고 이웃 나무를 배려하여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다.

이렇게 수관기피현상이 일어나다 보니 하늘에서 숲을 찍은 사진을 보면 나무들 사이에 마치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들어선 것 같은 장관을 연출한다.




나무들은 수관 사이의 간격 때문에 바람이 부는 날에는 그 바람에 맞춰 출렁거리면서 춤을 출 수가 있다.

수관 간격이 완충지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수관 사이의 그 틈으로 햇빛이 들어가면 키 큰 나무 아래에 있는 키 작은 나무들까지도 햇빛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간격 때문에 자기도 좋고 옆에 있는 나무도 좋고 저 아래 있는 나무와 풀들도 좋게 되는 것이다.


수관 사이의 간격이 없이 꽉 막힌 곳에서는 바람 한 점 구경하기 어렵다.

공기의 흐름이 없으면 나무도 풀도 산짐승도 살 수 없는 공간이 되고 만다.

그러니까 수관기피현상으로 빚어진 그 간격이 숲에 생명을 주는 것이다.

말 못 하는 나무들도 이렇게 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어야 숨통이 트이고 서로가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나 혼자서 독차지해서는 안 되고 사이좋게 나눠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사이좋다는 말은 어느 정도 떨어진 ‘사이(간격)’가 있다는 말이다.

그 떨어진 간격 때문에 좋은 사이가 된다.

적당한 간격을 유지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이유는 욕심이 많아서일 것이다.

살짝 거리를 두면 누군가 그 사이에 끼어든다.

운전할 때 보면 꼭 그런 사람이 있다.

건물 사이에 공터가 있는 꼴을 못 본다.

금방 건물이 들어선다.

집을 더 넓히고 더 많은 땅을 차지하려고만 한다.

땅이 비좁다고 높은 하늘까지 빼곡히 들어차고 있다.

머지않아 달나라에도 화성에도 깃발을 꽂으려고 할 것이다.

다른 사람과 적당한 간격을 두는 것이 아니라 딱딱한 벽을 둔다.

사이가 없다.


그런 곳에서는 상생할 수가 없다.

사이가 좋을 수 없다.

사람들도 아무도 안 온다.

올 수도 없다.

그러니 돈을 주고 모든 것을 사와야 한다.

나무도, 풀도, 꽃도, 사람도 돈으로 산다.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나무들처럼 정말 사이좋게 살아야 한다.


++ 이 글은 예전에 쓴 글인데 수정해서 다시 올린 거예요.

이전 글은 이미 브런치북에 실려 있는데 개별 삭제는 안 되네요.
제하려면 브런치북을 통째로 삭제해야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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