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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l 03. 2021

내 보폭에 맞춰서 걷자


딱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 답답함을 느낄 때, 몸이 찌뿌둥할 때, 소화가 덜 된 것 같을 때면 밖으로 나가서 그냥 걷는다.

동네 한 바퀴를 돌기도 하고 운동 삼아 거리를 늘리기도 한다.

한때는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은 청계산을 오르내리곤 했다.

남한산성 둘레길도 곧잘 걸었다.

익숙한 길이 지겨워지면 전에 걷지 않았던 길을 택하였다.


내가 사는 분당 끝에서 산길을 따라 불곡산, 태재고개, 영장산을 거쳐 남한산성 지화문까지 7시간을 종주했다.

구미동에서 잠실 한강공원까지 탄천 물길 따라 5시간을 걸어보았다.

정조대왕의 숨결을 느껴보고자 수원 화성의 담벼락을 만지며 두 시간가량 천천히 걷기도 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한계령에서 내린 다음 설악산 대청봉까지 올라갔다가 설악동으로 내려오는 당일치기 설악산 종주를 몇 해 동안 이어갔었다.

휴가철을 이용해서 3일 동안 지리산을 누비고 오기도 했다.




걷는 것을 좋아해서 걷는다기보다 걷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에 걷는다.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많은 축하를 받을 때가 첫걸음을 뗄 때가 아닌가 싶다.

아기가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면 모든 식구들이 박수를 치며 기뻐한다.

걷는 모습을 보면 아기가 건강하게 자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건강을 유지시키는 데 있어서 걷는 것은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허리가 아플 때, 목이 아플 때, 속이 아플 때, 무작정 걷기만 했는데 몸이 좋아진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건강을 유지시키는 데 있어서 걷는 것은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여행길에 차를 타고 지나가면 짧은 시간에 많은 지역을 둘러볼 수는 있지만 걷는 것만 못하다.

걸어보아야 볼 수 있는 게 있고 걸어보아야 들을 수 있는 게 있다.

이동 수단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두 발로 걸어야만 갈 수 있는 곳들이 있다.

그렇게 걷고 걸으면서 길을 만들고 또 그 길을 걷는다.

그래서 사람의 일생도 ‘인생길’이라고 표현한다.




사실, 일어나서 걸어 다니는 것보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게 편하다.

하지만 우리는 걷는다.

걸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걸어야만 일을 할 수 있고 걸어야만 먹거리를 구할 수 있다.


사람들이 여행가기를 좋아하는 것도 걷는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여행은 여러 면에서 불편하고 피곤하다.

잠자리도 불편하고 먹거리도 낯설다.

그런데 그 불편한 상황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는 것을 즐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존재)라는 유전자가 있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딸 둘을 둔 엄마는 길 위에서 죽는다고 한다.

큰딸 집에 갔다가 작은딸 집에 갔다가 하면서 산다는 말이다.

아들 둘 둔 엄마도 길 위에서 죽는다고 한다.

큰아들 집에서 나왔다가 작은 아들 집에서 나왔다가 하면서 산다는 것이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모든 사람은 길 위에서 살다가 길 위에서 삶을 마친다.




어차피 걷는 길인데 기왕이면 새로운 길을 걷고자 하는 것도 인간의 본성이다.

늘 보고 따랐던 이정표대로 가지 않고 굳이 다른 방향으로 돌아보기를 원한다.

길이 끝나는 곳에 다다르면 그곳에서 또 새로운 길을 만든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 어느 쪽이든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고, 내가 만들 수 있는 길이고, 내가 걸어갈 수 있는 길이다.

내 앞에 놓여 있는 길 중에서 잘못된 길은 없다.

아직 잘 다듬어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

좁고 험한 길이라 하더라도 여러 번 지나가다 보면 평탄한 길이 된다.


가끔 길 위에서 길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때는 길을 물어보면 된다.

그러면 걸어갈 길을 찾을 수 있다.

단숨에 다 걸으려고 욕심내서는 안 된다.

딱, 오늘 걸어야 할 만큼만 걸으면 된다.

빨리 걷는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고 늦게 걷는다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니다.

내 보폭에 맞춰서 걸으면 된다.

그게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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