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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벅찬 오늘 하루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사랑을 생각하다
by
박은석
Aug 1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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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하던 차에 불현듯 종이비행기나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깨끗하고 적당히 무게감이 있는 종이를 한 장 골랐다.
종이의 네 모퉁이를 잡고 가운데를 접고 다음에는 세모꼴로 접고, 접고 또 접는 사이에 비행기 한 대가 만들어졌다.
넓은 공간으로 나가 힘껏 날렸다.
‘슈욱~ 콕!’ 그래도 몇 초는 날아갈 줄 알았는데 날아가는 순간 추락이다.
기분이 조금 상해지려고 했다.
추락한 비행기를 다시 가져다가 접힌 부분을 잘 문지르고 균형이 맞았나 살펴본 후에 다시 날렸다.
‘슈우욱~’ 꽤 멀리까지 날아갔다.
다시 한 번 날려봤다.
이번에는 곡예비행을 하는 듯 춤을 추었다.
역시 손 좀 봐줬더니 고맙다고 보답을 하는 것 같다.
기분이 좋아졌다.
종이 한 장 때문에 이렇게 사람의 기분이 안 좋았다가 좋았다가 한다.
종이비행기 대회라는 행사도 있던데 거기 참가하는 사람들은 종이 한 장에 지극 정성을 쏟는다고 한다.
모든 것에 값이 매겨지는 세상에서 종이비행기의 값어치는 얼마나 될까?
종이 한 장과 채 1분도 안 되는 시간의 노력이다.
차마 값을 매길 수가 없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값을 매길 수 없는 경우는 두 가지이다.
너무 싸서 값을 매길 수 없고 너무 비싸서 값을 매길 수 없다.
종이비행기에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은 당연히 너무 싸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이비행기는 돈 주고 사는 사람도 없고 돈 받고 파는 사람도 없다.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삐딱하게 다르게 생각해보았다.
그 녀석을 만들려고 종이를 고를 때 무 종이나 날름 꺼내지 않았다.
나름대로 살피고 살펴서 좋은 종이를 골랐다.
선을 나누고 종이를 접을 때도 나의 눈이 그 종이에 집중해 있었다.
내 두 손이 종이를 꽉 잡고 있었다.
내 숨소리까지 종이에 전해지고 있었다.
내 머릿속은 온통 종이비행기 생각뿐이었다.
이것들을 값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종이비행기를 날렸을 때 그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속상해하기도 하였고 기뻐하기도 하였다.
흠집이라도 생기면 두 손으로 정성껏 닦아주었다.
나의 모든 관심을 종이비행기가 독차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은 것은 뭐가 있을까?
두 눈을 집중해서 바라보았던 적은 언제였을까?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매만졌던 것은 무엇이었나?
숨결이 전해질만큼 가까이에 다가간 존재가 누구였나?
그런 적이 있기는 했었나?
있었다!
분명히 있었다.
사랑을 시작할 때였다.
사랑이 꽃피울 때였다.
사랑이 열매를 맺을 때였다.
그때 세상은 멈춰버렸고 사랑과 나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았다.
그 시간이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랑이 일상이 되어버리자 마음은 잡다한 생각으로 뒤덮여버렸다.
종이비행기보다 더 재미있는 것을 찾아 나선 아이처럼 사랑보다 더 좋은 것이 뭐가 있을까 두리번거렸다.
그렇게 살아왔다.
종이비행기는 날리지 않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냥 휴지통에 버리는 한낱 종이쪼가리밖에 안 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관심을 기울이고 정성을 쏟으면 더없이 진귀한 것이 되지만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 필요도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했던 사랑이 세상에서 제일 추한 사랑이 될 수 있다.
종이 한 장에도 사랑을 쏟으면 세상에서 소중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더 이상 진가를 발휘할 수 없다.
마이더스 왕은 자신의 손이 닿는 모든 것이 다 황금으로 변하는 축복을 받았다.
그러나 그에게 황금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다.
사랑이 떠나갔기 때문이다.
사랑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랑이 있으면 종이 한 장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하지만, 사랑이 없으면 온 세상을 황금으로 만들어도 괴로울 수밖에 없다.
사랑이 제일이다.
사랑이 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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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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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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