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가는 것은 새로운 것을 맞이하는 과정이다

by 박은석


계절이 변하고 있다.

역대급 더위라며 폭염이 계속될 듯했지만 어느새 밤공기가 선선하다.

가을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벌써 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곧 9월이고 뭐 좀 새롭게 해 보겠다며 마음먹다 보면 10월이 오고 연이어 11월과 12월이 후딱 지나갈 것이다.

겨울도 멀지 않았다.

계절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계절을 살아가는 우리도 변한다.

몸도 변하고 마음도 변한다.


아마 우리가 보고 듣고 알고 있는 것 중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을 것이다.

튼튼하게 잘 만든 물건도 오랜 시간을 지내면 색이 바래고 이가 나가고 깨지고 허물어진다.

영원히 변치 말자며 평평한 돌멩이에다가 ‘endless love’를 새겨놓았는데 그 사람이 지금은 어디에 가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변했다.

마음이 변했다.

물리 법칙들은 변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환경이 변하면 들어맞지 않아서 새로운 법칙으로 바뀐다.

변한다.

모두 변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신의 철학을 ‘판타 레이(panta rhei)’라고 했다.

모든 것은 흘러간다, 변한다는 주장이다.

내가 강가에 앉아서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데 지금 보는 강물은 1초 전에 본 강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1초 전에 본 강물은 이미 흘러갔고 나는 새로운 강물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1초 전에 이 자리에서 강물을 본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1초 동안 내 몸 안에서는 여러 세포가 죽기도 했고 새롭게 생겨나기도 했다.

그러니까 1초 전의 나와 1초 지난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내가 변했다.


그렇게 조금 변한 것을 우리 눈이 인지하지 못하니까 10년 전의 사진을 보자.

그러면 확연하게 알 수 있다.

10년 전에도 나는 나였고 지금도 나는 나이다.

하지만 10년 전 나와 지금의 나를 똑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변했기 때문이다.

몸도 변했고 마음도 변했고 생각도 변했다.




인간에게는 괴팍한 고집이 있어서 누가 “이것이 맞다!”라고 외치면 그것에 반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런 고집스러운 면이 있기 때문에 만물이 변한다고 하니까 변하지 못하게 붙들어두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마치 안 변하는 척 꾸민다.

염색도 하고 주름살도 펴고 운동도 하고 목소리와 걸음걸이를 교정하고 유지하려고 한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너는 하나도 안 변했네.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라며 수다를 떤다.

옆에 앉아 있는 중딩들 눈에는 아저씨, 아줌마, 할아버지, 할머니로 보일 텐데도 말이다.

중딩들 눈에 그렇게 비치거나 말거나 우리는 안 변했다고 하면 좋아한다.

그만큼 아직 젊다는 것이고 힘이 있다는 것이며 특출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착각이다.

아무리 안 변했다고 말을 해도 이미 변했고, 똑같다고 해도 이미 똑같지가 않다.

싹 다 변했다.




변하는 것이 싫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것은 변하는 것을 안 좋게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냥 여기서 딱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들이 있었다.

고 올망졸망한 모습이 이쁘고 귀여워서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다.

하지만 실제로 대여섯 살 아이가 더 이상 커가지 않으면, 변하지 않으면 그때는 큰 재앙을 만난 것과 같은 충격을 받을 것이다.


변해가기 때문에 오늘은 이 모습이지만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기대를 가질 수 있다.

모두가 변해가기 때문에 내 눈은 시시각각 새로운 것을 보고 내 귀는 늘 새로운 소리를 듣는다.

새로운 것이 다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새로운 것이 좋다.

여러 물건 중에서 하나를 택한다면 기왕이면 새로운 것을 잡는다.

계절이 변한다고 아쉬워만 하지 말자.

모든 것이 변하고 변하는 모든 것은 새롭다.

변해가는 것은 새로운 것을 맞이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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