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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벅찬 오늘 하루
자존심을 죽이는 길이 자존심을 살리는 길이 된다
by
박은석
Aug 3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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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 하고 온갖 낯부끄러운 뉴스들이 쏟아져 나온다.
정치인들의 행보는 지지하는 정당에 따라서 좋게도 볼 수 있고 삐딱하게 볼 수도 있다.
그런 건 인정한다.
하지만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일부러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
도대체 어느 우주에서 똑 떨어진 인간들인지 뉴스 기사마다 천인공노할 사건이라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러려니 한다.
서구사회는 개인주의가 발달했고 나이 연하를 불문하고 상대방에게 “유(You)!”라고 부를 수 있는 사회니까 우리 기준으로서의 예의범절을 따질 수 없다.
옆 나라 중국의 뉴스는 아예 별종으로 치부한다.
“중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대.”라고 하면 “중국이니까 그렇지.”라고 대답을 하고 끝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이 나오면 견디지 못한다.
마치 그 놈들에게 내가 당한 것 같아서 분노가 솟구치고 자존심이 상한다.
길 가던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손주뻘밖에 안 되는 중고등학생들에게 욕을 당하셨다는 뉴스를 들었다.
뉴스를 다 듣기도 전에 제목만 보았을 때부터 피가 끓었다.
술 취한 승객이 아버지뻘 되는 운전기사에게 폭언과 폭행을 행했다는 뉴스를 들을 때도 욕지기가 나왔다.
비단 나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는 매일 이런 못된 놈들을 처벌해달라는 신문고가 울린다.
아직까지는 우리 민족의 핏속에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자부심이 돌아다니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려면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
오죽했으면 공지영 작가가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책 제목을 지었을까 싶다.
우리가 유교사상을 오랫동안 신봉해서 예의를 강조한다고 할 수만은 없다.
공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두 사람 이상만 모이면 자연스레 지켜야 할 질서가 생긴다.
그게 예의이다.
내 맘대로 아무렇게나 살고 싶은데 다른 사람 때문에 절제를 해야 한다.
피해를 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절제할 때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본능적으로 우리는 남의 눈치를 보기 싫어한다.
남의 눈치를 보는 순간 자존심도 상한다.
자존심은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이니까 살려야 하는데 때에 따라서는 자존심을 죽여야 하니까 불협화음이 난다.
그래서 기분이 상한다.
더군다나 나로서는 최선을 다하여 진실되게 행동했는데 상대방이 나를 받아들여주지 않고 오해할 때가 있다.
정말 억울하고 자존심 팍 상한다.
그런 때는 “내가 뭘 잘못했냐고?”, “내가 틀린 말 했냐고?” 따져 묻는다.
하지만 그런 말을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할 때가 있다.
절대 권력자 아래 있을 때가 그렇다.
죽으라고 하면 죽는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시절에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시절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자존심은 늘 죽여야 하는 것이었다.
2,100년 전 중국 한나라 시대에 사마천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여러 분야에 깊은 학식을 지녔고 아버지의 대를 이어 관리로서도 충성스럽게 일했다.
하지만 전쟁에 패전한 장수를 옹호했다는 이유로 임금의 노여움을 사서 사형판결을 받았다.
사형을 면하려면 어마어마한 돈을 내든지 아니면 성기를 잘라내는 궁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궁형을 당해서 남자 구실을 못하고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고 했다.
그게 그 당시의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사마천은 자존심을 죽이고 궁형을 받아 남자 구실 못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그에게는 지키고 싶은 또 다른 자존심이 있었다.
아버지의 유언대로 역사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남자로서의 자존심은 죽이고 학자로서의 자존심은 살렸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사기(史記)이다.
사기가 사마천의 자존심이 되었다.
"때로는 자존심을 죽이는 길이 자존심을 살리는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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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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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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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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