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차이이지만 기준을 잡아주는 사람

by 박은석


글을 쓰고 맞춤법과 띄어쓰기 검사를 마치고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오타가 있었다.

보고 또 봤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시간이 지나서 보인다.

이런 일이 꽤 일어난다.

왜일까?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을 때 나는 그 문장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눈이 슬쩍 넘어가기 때문이다.

이 단어 다음에 어떤 단어가 이어지는지 머릿속에서 벌써 계산이 된다.

그래서 비슷하게 보이면 맞다고 생각하면서 넘겨버리는 것이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내 마음속에 나 자신을 믿을 수 없다는 신념이 굳건하게 자리 잡았다.

그래서 가급적 한 번 쓴 글을 검토할 때는 소리를 내어서 읽으려고 한다.

그러면 눈에 안 보였던 오탈자가 보이고 문장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도 보인다.

현대인들의 언어습관으로는 차이를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지만 우리말에도 음의 높낮이와 길고 짧음이 있다.

이런 것은 소리를 내서 읽었을 때 알 수 있다.




아주 작은 차이이다.

하지만 그 작은 차이가 너무나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대학시절에 학교 앞 전철역의 이름은 ‘외대 앞’ 역이었다.

어느 날인가 교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전철역 이름을 발음해보라고 하셨다.

우리는 큰소리로 발음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왜 틀리게 발음하냐며 호통을 치셨다.

한국어교육과를 왔고 한국어 선생이 될 사람들이 단어 하나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냐고 야단이셨다.


교수님은 우리에게 [외대]라고 천천히 발음해주셨다.

우리도 분명하게 [외대]라고 발음했다.

하지만 교수님은 잘못 발음했다고 하셨다.

우리의 발음은 [왜대]라고 하셨다.

[외]와 [왜]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발음이라고 하셨다.

그날 이후로 어디 가서 말을 할 때 발음에 굉장히 신경이 쓰였다.

발음 하나 차이로 내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는 혀가 짧은 사람인데 어떡하라고?




발음 하나라도 제대로 하려고 하는 나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세상은 막 쓰는 말들로 넘쳐나고 있다.

맞춤법 같은 것은 아예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

신조어라고 하면서 인터넷과 카톡에서 돌아다니는 말들로 도배를 한다.

식당에서 자리를 안내하는 이들은 “여기로 오실게요.”라는 말을 예의를 갖춘 말처럼 쉽게도 한다.

듣는 나는 굉장히 기분이 안 좋다.

“여기로 오세요.”라는 버젓한 말을 두고 왜 그렇게 말을 배배 꼬아서 하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많이 쓰면 그게 표준말이 된다면서 오히려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즐겨하는 사람들도 많다.

내가 꼰대가 되어가는가 싶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은가?


아나운서가 된 선배도 있고 친구도 있는데 입사시험을 치를 때 발음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고 했다.

그나마 우리 사회에 그런 직업군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사람들이 다 쏠려가더라도 기준을 잡아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주연을 맡은 영화 <타이타닉>에서 제일 감동적인 장면은 배가 침몰하는 순간까지 음악을 연주했던 현악4중주 연주자들의 모습이었다.

그들도 두려웠을 것이다.

빨리 탈출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신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분명히 보여주었다.

음악가는 음악을 할 때 존재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공포와 두려움에 떨면서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고 있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

잠시라도 마음에 평안을 주는 사람.

그들이 음악가였다.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이라고 해서 내가 가야하는 길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나는 나 홀로 가야하는 길을 갈 수도 있다.

그게 내가 가야 하는 길이라면 그 길을 가야 한다.

함석헌 선생도 그런 사람을 찾았다.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그 물음에 “네!”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 <타이타닉> 현악 4중주 연주++

https://youtu.be/ur9JHXirUBs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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