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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냥 쉼
by
박은석
Sep 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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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아래층 어떤 집에서 울음소리가 났다고 한다.
나는 세상모르고 잠이 들어 있어서 몰랐는데 아내와 딸이 그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 울음소리가 3층에 사는 우리 집에도 들렸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추석날 아침부터 눈물을 흘렸을까? 물론 모두들 즐겁게 지내는 날이라고 해도 나에게 속상한 일이 생길 수 있다.
인생의 불행이라고 하는 것들은 우리를 피해 다니지 않는다.
어느 으슥한 골목에 숨었다가 우리가 그 옆으로 달려갈 때 슬그머니 다리를 뻗어서 우리가 걸려 넘어지게 한다.
고꾸라진 우리는 아파 죽겠는데 불행이라는 놈은 그 장난이 재미있다고 낄낄거린다.
얄미워도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다.
왜 하필 나에게 발을 거냐고 따져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내가 만만해서 그런 거냐고, 호구로 보이냐고 야단을 치고 싶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홀로 속앓이만 할 뿐이다.
아마 아침부터 눈물을 흘렸던 그분도 그랬을 것이다.
명절이라고 기분 좋게 모였는데 하필 그 자리에서 뭔가 안 좋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을 것이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을 텐데 일이 그렇게 꼬였다.
한 번 꼬인 실타래가 두 번 꼬이고 세 번 꼬이면 풀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실타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다.
처음에는 잘해보자고 한마디 주고받았는데 그게 주파수가 맞지 않았을 것이다.
피지직 하는 잡음이 들렸을 것이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 주파수를 맞추려고 또 한마디했는데 오히려 더 멀어져만 갔다.
잡음이 듣기 싫으면 라디오를 꺼버리면 되는데 기어코 잡음을 잡아보겠다면 더 큰 잡음을 만들어낸 꼴이다.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되는데 안 볼 수가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번에 보면 좀 잘 풀어보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되었다.
더 꼬여버렸다.
그래서 아침부터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다른 날도 속상하면 기분이 나쁜데 명절에 속상하면 더욱 기분이 나쁘다.
제발 이번 명절은 편안하게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하는 마음으로 모인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이면 그중에 꼭 남의 속을 긁어놓는 사람이 있다.
따로 조용히 불러서 왜 그렇게 남의 속을 긁냐고 물어보면 자기가 언제 그랬냐고 되레 의아해한다.
자기가 틀린 말을 했냐고 따지기도 한다.
다 좋게 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한다.
그래야 집안이 좋아지고 서로가 좋아진다는 논리이다.
듣다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가족들이 모인 자리는 맞고 틀리고를 따지자는 자리가 아니다.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하등 도움이 안 된다.
세상에 많고 많은 건물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우리 집이 좋은 이유는 몸과 마음이 편안한 곳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이 있지만 가족이 좋은 이유도 편안하기 때문이다.
편안하지 않으면 좋을 이유가 아무것도 없다.
명절을 딱 하루로 정하지 않고 며칠 이어서 연휴(連休)로 부르는 것에도 일리가 있다.
명절이라고 이 일 저 일 하면서 일에 치이지 말라는 거다.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면서 사람에 치이지 말라는 거다.
그동안 고생 많았으니까 푹 쉬라는 거다.
하루로는 피로가 풀리지 않을 수 있으니 이틀 사흘 연이어서 잘 쉬라는 거다.
그 바람대로 명절 연휴는 잘 쉬었으면 좋겠다.
가족들을 만나서 쉬고,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쉬고,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쉬고, 서로의 짐을 나눠주면서 푹 쉬었으면 좋겠다.
미국의 극작가이자 배우였던 존 하워드 페인은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라는 노래 가사를 지었다.
그 노래가 미국을 넘어 전 세계 많은 사람에게 불리는 이유는 나의 집이 바로 내가 쉴 곳이라는 공감대를 얻기 때문이다.
잘 쉴 수 있어야 즐거운 명절, 즐거운 집이 된다.
오늘은 그냥 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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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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