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알고 지낸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의 질량은 몇 년 몇 달 며칠이었냐의 많고 적음으로 무게를 잴 수가 없다.
하루를 만나도 천년의 무게를 지닐 수 있고 수십 년을 만났어도 1초의 무게도 버티지 못할 수 있다.
그의 말 한마디가 내 귓전을 스쳐가는 수천 마디의 말보다 더 많이 내 마음에 메아리칠 수 있다.
그의 얼굴 표정 한 모습이 수만 군상의 표정보다 더 깊게 내 마음에 패일 수 있다.
눈빛만 봐도 그의 마음을 알 수 있다.
공기의 흐름만으로도 그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그가 앉았던 자리에는 여전히 그의 온기가 남아 있다.
그 온기가 차갑게 식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의 존재는 시간으로 따질 수가 없다.
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떠나갈 수 있지만 마음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다.
두고두고 그 자리를 맴돈다.
십 년이 지나도 이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자리이다.
스무 살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보라면 1월부터 12월까지를 읊어나가지 않는다.
그렇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우리의 머릿속이 아무리 넓다 해도 그 모든 것들을 다 저장하지 않는다.
“그때는 그랬어.”로 마무리되는 그 몇 가지 일들만 저장한다.
자세히 그때의 일을 따라가 보면 그 일은 그리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난 것이 아니다.
스무 살의 365일 중 하루일 것이다.
그 하루의 24시간 중의 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한 시간의 60분 중에서 고작 10분이나 되었을까?
하지만 그 10분이 스무 살의 한 해를 다 설명해주기도 한다.
그 10분의 일은 마치 다운받은 드라마처럼 10년 20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반복 재생되고 있다.
내가 보고 싶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
머리가 희끄무레해졌을지라도 그때를 생각하는 순간만큼은 스무 살 청춘이다.
늙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딱 그만큼이다.
한번 만나면 한번 헤어지는 것이 인생이다.
헤어지기 싫다고 해도 헤어지지 않을 방법이 없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함께 있겠다고 하더라도 그 후에는 헤어진다.
그는 그의 길을 가야하고 나는 나의 길을 가야하기 때문이다.
평행하지 않은 두 선이 어느 순간 맞닿아서 잠깐 같이 있었던 것이다.
때가 되면 가던 길을 향해서 떠나간다.
떠나는 것이 순리이며 운명이다.
떠날 때가 되면 발을 붙들어 맬 수도 없고 옷자락을 잡고 늘어질 수도 없다.
그는 그의 길로 떠나고 나는 나의 길로 떠난다.
그러나 떠나면서도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다.
그 약속에는 새끼손가락을 걸지 않아도 된다.
이미 마음속에 약속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의 이름을 한 번 부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마음속으로 불러도 상관없다.
부르면 언제라도 어디에 있더라도 그는 나에게로 달려오고 나는 그에게로 달려간다.
멀리멀리 간다고 해서 영원히 못 만날 곳으로 가는 것도 아니다.
고작 가봤자 지구 끝 어디일 뿐이다.
달나라까지도 못 간다.
별나라는 엄두도 못 낸다.
맘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날아갈 수 있는 곳이다.
더군다나 몸은 떠나가더라도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잘 가라고, 잘 있으라고 말할 수 있다.
아쉽지만 그래도 괜찮다.
내 안에 이미 그가 들어와 있고 그와 함께 했던 추억들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추억을 만들고 추억과 추억이 쌓여서 사람을 만든다.
오늘의 나는 지난날 만났던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 만들어낸 추억들로 빚어졌다.
그들도, 그 추억들도 소멸되지 않고 여전히 내 속에 살아 있다.
그를 만났을 때 “안녕”이라고 했던 것처럼 그를 떠나보낼 때도 “안녕”이라고 할 수 있다.
만남과 헤어짐은 이미 내 안에서 하나임을 알기 때문이다.
함께 있어도 떠나 있어도 우린 “안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