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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11. 2021

거기에 사람이 있었다!

 

<동물농장>, <1984>를 쓴 작가 조지 오웰이 아프리카 모로코의 마라케시라는 지역에서 몇 달 동안 요양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기후도 적당히 따뜻했고 저렴한 비용으로도 여유 있게 지낼 수 있었다.

모로코인들은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오랫동안 받아왔기에 유럽인에게는 습관적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인구의 절대다수가 절대적인 궁핍에 허덕이고 있었다.

밭을 갈고 가축을 치면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유럽인들이 이런 나라에 여행을 가면 풍족하게 지낼 수 있다.

조지 오웰도 몇 달을 거기서 푹 쉬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뜻밖의 발견을 하였다.

매일 오후가 되면 집 앞으로 나뭇짐을 잔뜩 진 사람들이 지나간다.

자기 집 땔감으로 쓰는 사람도 있을 테고 시장에 내놔서 팔려고 하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매일 보는 풍경이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그날은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을 보았다.

나이 많은 노파들이었다.




당시만 해도 모로코에서는 일가족이 어디로 갈 때면 아버지와 아들은 당나귀를 타고 앞서가고 그 뒤를 나이 많은 어머니가 짐을 지고 따라갔었다.

그래서 여성들은 자신들을 짐 나르는 당나귀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그 노파들이 매일 오후가 되면 나뭇짐을 지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창밖을 보면서 조지 오웰은 ‘오늘도 나뭇짐이 지나가는구나!’라고만 생각했었다.

그 짐을 지고 가는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나뭇짐을 지고 가는 노파들 뿐만 아니라 뙤약볕 밑에서 땅을 갈고 있는 농사꾼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노동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눈에 잘 띄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만약 유럽인이어도 그랬을까?

조지 오웰은 유럽인이 만약 밭 가는 일을 하고 있었다면 한 번쯤은 눈을 돌려 바라보았을 것이라고 했다.

‘어? 유럽인이 밭을 갈고 있네?’하면서 말이다.




오웰은 모로코에 도착한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서 너무 많은 짐을 진 채 지나가는 당나귀를 보고 격분하기도 했었다.

당나귀를 너무 가혹하게 다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라면 저런 일은 도무지 상상도 못 할 거라고 했다.

당나귀가 불쌍하다고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무거운 짐을 진 채 자기 앞을 지나가는 흙빛 피부의 사람들은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냥 짐짝이 지나간다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장작더미 아래에 있는 사람을 주목해서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했다.


미안한 마음에서인지, 부끄러운 마음에서인지 오웰은 노파를 불렀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동전 하나를 쥐여주었다.

그 순간 동전을 받은 노파는 고음의 비명에 가까운 탄성을 질러댔다.

오웰은 다시 한 번 깜짝 놀랐다.

자신에게는 특별하지도 않고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은 동전이었는데 그 노파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하였던 것이다.




살아가면서 자꾸 사람을 못 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내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을 보지 못한 채 그 곁을 지나치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사람은 보지 못하고 그 사람이 하는 일들만 보인다.

그 일들은 허드렛일이라고 생각해서 그 일들을 하는 사람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 일들이 사실은 중요한 일인데 말이다.

그 일들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먹고살고 있고 편안하게 지내고 있고 안전하게 오갈 수 있다.

그러니까 그 일들을 하는 사람들은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리 눈이 그들을 보지 못하고 지나친다.


내 눈앞을 지나고 있는데 그들을 보지 못하고 있으니 내 눈이 어떻게 된 것일까?

찔러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딱딱한 사물들은 잘만 보이는데 나와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왜 보이지 않는 것일까?

거기에 사람이 있는데 왜 보지 못하고 있을까?

++조지 오웰의 이 이야기는 그의 수필집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마라케시(Marrakech)>에 나온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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