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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12. 2021

김유신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고구려, 백제, 신라 중에서 유독 신라의 이야기를 많이 실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으니까 그랬을 것이다.

삼국통일의 주역인 신라의 김유신 장군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도 신라의 김유신 장군과 기녀인 천관(天官)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이야기도 실려 있다.


신라의 장군 김유신은 한때 술중독자처럼 매일 주막에 드나들었다고 한다.

사실 술이 좋아서라기보다 그 주막을 운영하는 천관이라는 여인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천관은 사람들 사이에서 절세미인이라고 명성이 자자한 기녀였다.

천하의 김유신이라도 좋아할 만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알게 된 그의 어머니가 김유신에게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를 꿈꾸는 사람이 항상 주색에 빠져서 어떻게 큰 뜻을 이룰 수 있겠느냐고 호통을 치셨다.

그 말을 들은 김유신은 마음이 뜨끔해서 다시는 천관에게 가지 않기로 다짐하고 책읽기와 무예에 전념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김유신이 전쟁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에 말 위에서 졸았다.

그런데 그의 말은 습관적으로 김유신을 천관의 집으로 모셨다.

천관은 김유신이 온 것을 보고 달려 나와 반갑게 맞이했다.

잠에서 깬 김유신은 자신이 천관의 집에 온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자신의 다짐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말에서 내려서 자신의 애마를 꾸짖었다.

“네가 비록 짐승이기는 하지만 어찌 주인의 마음을 모른단 말이냐?”라고 호통을 치고는 칼을 빼서 말의 목을 쳤다.

그리고 천관의 집을 떠나서 다시는 그녀를 찾아가지 않았다.


과연 대장부의 기개라며 칭찬이 자자했다.

그 정도의 인물이니까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했다.

선생님들은 김유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이 뜻을 세웠으면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하셨다.

‘남아일언중천금(南兒一言重千金)’이라며 열변을 토하셨다.




그때는 김유신이 정말 멋있어 보였다.

천관이 미소를 머금고 달려오는데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자기 말에게

“네 이놈!”하면서 칼을 빼고 촤악!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모습이 사내대장부의 모습이라 생각했다.

눈을 휘둥그레 하게 뜬 채 비석처럼 서 있는 천관의 모습과 대조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이 그럴 수 있나 싶은 마음이 든다.

말이 무슨 잘못이 있었을까?

천관은 또 무슨 잘못이 있었나?

그들은 잘못한 게 없다.

잘못이 있다면 김유신을 좋아했다는 것뿐이다.

김유신을 좋아했으니까 김유신이 좋아했던 천관의 집으로 모신 것이다.

김유신을 좋아했으니까 오랜만에 들른 김유신을 맞이한다며 달려 나온 것이다.

말에게 자신의 결심을 한마디라도 해준 적이 있었을까?

천관에게 자신의 뜻을 알려주기라도 했었을까?

“내 마음을 모르냐?”라고 호통쳤는데 남이 어떻게 알겠는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면 안 되는 일이었다.

칼을 빼들고 말을 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뺨을 때리고 자신의 마음을 쳤어야 했다.

회초리를 들고 자신의 종아리라도 쳤어야 했다.

결단은 자신에게 내리는 것이고 자신이 수행하는 것이다.

주변을 탓할 게 아니다.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결단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충실하게 살고 있었을 뿐이다.


의롭다는 것, 기개가 있다는 것은 남을 짓밟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잘못을 남에게 덧씌우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남의 실수와 잘못까지 내가 대신 지는 거다.

말이 잘못한 게 아니라 내가 잘못했다며 말에게 미안하다고 했어야 했다.


조너선 스위프트가 쓴 <걸리버 여행기>의 마지막 여행지는 말들의 나라(후이넘)였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말들이 사람보다 더 나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말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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