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책 중 제일 실패작은 가족정책이다

by 박은석


나는 2남 4녀 중의 장남이다.

위로 누나가 셋 있고 아래로 동생이 둘 있다.

만약에 어머니가 유산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둘 정도 더 낳으셨을 것이다.

내 나이 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 형제가 6남매라면 좀 많다는 반응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놀라지는 않는다.

그 시절에는 그런 가족들도 꽤 있었다.

국민학교 때는 종종 선생님께서 가족 조사를 하셨다.

그러면 나보다 형제가 더 많은 아이들도 있었다.

형제가 열 명이었던 친구도 있었고 한 다스를 낳은 어머니들도 계셨다.

그러다 보니까 삼촌과 조카가 같이 학교에 오는 경우도 있었다.

선생님과 제자로 오는 게 아니라 그냥 둘 다 학생으로서 등교했던 것이다.

서울 사는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무슨 6.25 때 간난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냐며 믿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엄연한 현실이었고 우리는 그런 걸 가지고 유난을 떨지도 않았다.




당시에는 나라에서 관공서나 학교 등 눈에 잘 보이는 건물에는 표어들을 붙이게 했다.

세로로 두 줄 나란히 쓴 표어에는 산불조심, 멸공방첩 등을 주제로 한 내용들도 있었지만 가족계획에 대한 표어도 있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는 너무 인상적이었는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조금 지나니까 ‘아들딸 구별 말고 하나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도 등장했다.

동네의 나이 젊은 애아버지들은 예비군 훈련을 갔다가 뭘 묶고 왔기 때문에 이제는 예비군 훈련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며 웃곤 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묶은 것 때문에 집안 어른들에게 혼이 나고 부부간에 싸움이 난 집들도 많았다.

나중에는 그 묶은 것을 푸네 마네 하였다.

도시에서는 아이가 많으면 집을 얻을 수 없다는 것으로 협박을 했는데 시골에서는 예비군 훈련에 빠질 수 있다는 것으로 유혹을 했다.




성인이 되어 아이를 낳고자 하는 것은 종족보존 본능이다.

사람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죽게 되는데 죽기 전에 자기를 닮은 존재를 이 세상에 남기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

그러기에 아기를 낳기 위해 수백 수천만 원이 드는 시술을 받기도 하고 대리모를 통해서 낳기도 한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낳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이상하게도 더 많이 낳으려고 한다.

그래야 그중의 몇 아이라도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을 가지고 문명이 어쩌느니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무식한 말이다.

전쟁이 나거나 전염병이 돌거나 사회적인 불안이 심했던 때에는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건 많이 낳았다.

지금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먹고살기도 힘든데 왜 애를 많이 나았냐고 타박하겠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인생살이는 자식 농사이니까 일단 많이 낳으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여겼다.




국가정책 중에 제일 실패할 확률이 높은 정책이 가족계획인 것 같다.

많이 낳으면 애들을 어떻게 키울 거냐고 했는데 어떻게든 살아간다.

산 입에 거미줄 치지는 않는다.

아이를 적게 낳으면 집중해서 잘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아이들이 적으니까 사회가 돌아가지를 않는다.

애를 낳으면 돈 백만 원을 준다고 하는데도 먹혀들지 않는다.

당연하다.

자기들이 키울 것도 아니면서 돈 백만 원으로 퉁치려고 하니까 그렇다.

우리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서도 여섯 명을 낳아서 잘 키웠다.

우리는 어머니보다 나은 살림인데 두 명도 버겁다.

하나 낳아도 좋고 여럿 낳아도 좋고 하나도 안 낳아도 좋다고 보면 안 될까?

종족보존 본능이 있으니까 적당히 낳을 거다.

지금은 한반도에 8천만 명이 살지만 예전에는 8천 명이 살 때도 있었다.

그렇게 인구가 적으면 힘들지 않았겠냐고?

아니다.

그때도 세상은 잘 굴러갔고 엄청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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