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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Sep 22. 2020

오뚝이처럼


어릴 적 오뚝이 인형은 볼수록 참 신기했다. 동글동글 눈사람처럼 생긴 것이 쓰러지면 일어나고 쓰러지면 일어났다. 몸 안에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추가 있어서 그런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이게 무슨 마법의 장난감인 줄 알았다.


오뚝이가 우리에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오뚝이가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일 것이다. 5천년 역사 속에서 900번이 넘는 외침을 받았다고 하니 어지간한 나라들의 경우에는 벌써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한민족은 밟히고 밟혀도 다시 일어났다. 초봄의 보리싹처럼 밟힐수록 더울 뿌리를 깊게 내렸고 힘차게 솟아올랐다.


선생님들은 오뚝이를 예로 들면서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다시 일어나라고 칠전팔기(七顚八起)를 외치셨다. 그러면 우리들은 일곱 번 넘어지면 일곱 번 일어선다며 속으로 웃곤 했었다.   

  

어린아이들은 넘어지면 벌떡 일어선다. 하루에도 수십 번 넘어지는데 넘어진 횟수만큼 또 일어선다. 설령 무릎이 깨졌다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지만 일어서는 것만은 잘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오뚝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 꼭 오뚝이가 자기들의 모습을 따라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인가 보다.


그런데 어느 순간이 오면 더 이상 오뚝이를 보아도 신기하지도 않고 놀라지도 않는다. 오뚝이의 비밀을 알아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더 많은 세상일들이 더 재미있게 다가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만큼 나이가 든 것이다. 그래서 오뚝이가 보이더라도 무심한 눈빛으로 쳐다볼 뿐이다.


그런데 오뚝이를 보는 눈이 데면데면해지는 만큼 우리도 다시 일어서는 것이 쉽지가 않다. 아예 넘어진 곳에 이부자리를 깔고 누워버리기도 한다. 일어서야지, 일어서야지 말은 하지만 말대로 되지 않는다.     


일어서지 못하면, 넘어진 자리에서 머물러 있으면, 가라앉아버리면, 바닥에 붙어버리면, 그것으로 끝난다. 다시 일어서야 뭐라도 할 수가 있다. 사각의 링 안에서 펼쳐지는 프로레슬링이나 권투에서 보았지 않은가? 넘어진 선수에게 코치와 관중들이 외치는 소리는 “일어나!”라는 말이다. 심판이 손바닥으로 바닥을 세 번 치기 전에 일어나야 한다.


일어서면 다시 기회가 생긴다. 오뚝이가 계속 일어설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무거운 추가 있기 때문이다. 둥그런 오뚝이의 몸 안에 단단하게 붙어 있는 이 쇳덩어리 때문에 오뚝이는 충격을 받아도 나가떨어지지 않는다. 좌우로 흔들어도 일어서고 앞뒤로 엎어뜨리고 자빠뜨려도 다시 일어난다. 묵직한 추가 흔들리지 않고 자기 자리를 잘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렸을 때에야 다리와 무릎이 아직 덜 발달했기에 수도 없이 넘어지고, 노년이 되면 다리와 무릎의 힘이 빠져서 몸을 지탱하지 못하니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젊은 사람들은 안 넘어지는가? 그들도 넘어진다. 조심조심 걸어도 빙판에서 넘어지고 빗길에서 넘어진다. 가만히 서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밀어붙이는 바람에 넘어지기도 한다. 병이 나서 넘어지기도 하고, 사업과 업무를 망쳐서 넘어지기도 한다. 인간관계 속에서 해결점을 찾지 못해 숱하게 넘어지고, 자기 자신이 못마땅해서 스스로 넘어지고 주저앉기도 한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려면 무게중심을 잡아야 한다. 나의 힘으로 두 팔을 땅에 짚든지, 아니면 옆 사람의 도움을 구하며 그의 손을 붙잡든지 간에 무게중심을 잡아야 한다. 때로는 지팡이를 의지하듯이 옆에 놓인 환경을 이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넘어지는 것도, 일어나는 것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뚝이의 얼굴 표정을 보라. 넘어질 때도 웃고 일어설 때도 웃고 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늘 웃는다. 무게 중심은 어쩌면 그 웃는 얼굴에 있을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뭐 이까짓 것쯤이야!’ 하고 탁탁 털어버리는 털털한 마음에 있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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