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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Sep 20. 2020

점묘법의 마지막 한 점

미술 회화 기법 중에 1800년대 후반에 소개되어 신선한 충격을 준 점묘법이란 채색방법이 있다.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색칠은 붓으로 물감을 찍어서 선을 그리고 면을 채우는 방식이다. 그런데 점묘법은 선과 면의 구분을 두지 않고 점점이 점을 찍기만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점들이 모아지면 우리 눈에 착시현상을 일으켜서 그림이 더 사실적으로 보인다. 인물의 동작도 더욱 역동적으로 보이고 빛의 농도도 더욱 도드라진다. 그래서 이 점묘법의 원리를 활용해서 오늘날의 사진 인화 기술이 발전하게 되었다. 컬러프린터로 출력한 그림이나 사진을 자세히 보면 아주 작은 색점들을 흩뿌려 놓은 것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점묘법이다.     


점묘법은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모네에 의해서 널리 소개되었다. 그는 종전의 그림 그리기 방식을 뛰어넘어 빛이 비치는 정도에 따라 사물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빛에 대해서 더욱 많은 연구를 하였고 처절하게 빛을 관찰하며 그림을 그렸다. 빛이 비치면 그림자가 생기는데 그 그림자의 색을 자세히 보니까 단순히 검은 색이 아니었다. 좀 더 밝거나 좀 더 어두운 빛일 뿐이었다. 그 미묘한 빛의 차이를 표현하기 위해 그가 사용한 방법이 바로 점묘법이었다. 이전에는 그림을 그리다가 좀 밝은 부분은 흰색을 덧칠했고 좀 어두운 부분은 검은색을 덧칠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색을 덧칠하다 보면 그림이 전체적으로 점점 더 어두워지고 사실적이라기보다 딱딱한 사물처럼 굳어버리는 죽은 그림이 되고 만다.     


모네는 어떻게 하면 그림을 더욱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그릴 수 있을까 연구하다가 빨간색 점을 찍어 놓고 그 주위에 노란색 점을 찍으면 두 색깔이 상호 영향을 끼쳐 일반적인 주황색보다 훨씬 밝은 주황색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점을 찍어서 그림을 그리고 나니 그림이 마치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대단한 발견이었다. 하지만 한 점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수십만 번의 점을 일일이 찍어야만 했다. 그것은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되는 일이었다. 우리가 만약 모네 곁에 있었다면 어느 세월에 그림을 완성하느냐고, 한 번 붓칠 쓱 해버리라고 하였을 것이다. 점 하나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네는 그 점들이 모여 살아있는 그림이 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사실 우리도 이 세상에 점과 같은 존재이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 보아도 전 세계 75억 인구 중에서 우리는 뭐 특출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는다. 점 하나 없다고 해서 그림이 망가지는 것이 아니듯이 세상은 우리가 없어도 별 문제 없이 잘만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점들이 모여야 그림이 완성되듯이 점과 같은 우리가 모이고 어우러져야 세상이라는 작품이 더욱 화사하고 도드라지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고사성어 중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작품을 그렸어도 마지막 점을 잘못 찍으면 작품을 망치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 점 하나를 제 자리에 잘 찍음으로써 그림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아니다. 비록 하나의 점과 같아서 잘 보이지도 않고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우리는 매우 소중한 사람이다. 우리가 제 자리에 있을 때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비록 작은 점일지라도 우리 각자는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작품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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