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심은 곳간에서 나오고 천심은 백성들의 배에서 나온다

by 박은석


이성계가 한양을 수도로 삼고 조선을 건국하였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사실 한반도의 정치, 경제의 중심지는 개성이었다.

개성은 5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고려의 수도로서 그 터를 공고히 다져놓은 상태였다.

그에 비해서 한양은 아직 도시 건설이 말끔하게 되어 있지 않았다.

성곽을 두르고 그 안에 왕궁 정궁인 경복궁을 짓고 동서남북에 큰 문을 세웠지만 여전히 어수선했다.

특히나 여름 장마철이 되면 인왕산, 북악산, 북한산, 남산에서 흘러내린 물들이 경복궁 앞에서 만나 큰 홍수를 일으키기도 했다.

왕궁 바로 앞이 물바다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왕실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백성들은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고 새로운 지도자가 통치한다기에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려나 잔뜩 기대를 했는데 그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농사가 잘되었던 것도 아니었다.

백성들은 항상 배가 고팠다.




인심은 곳간에서 나오고 천심은 백성들의 배에서 나온다.

백성들은 자신의 배를 부르게 해주기만 하면 그 군주를 최고의 성군으로 모신다.

배가 부르면 언제나 태평성대이다.

그런데 그 당시 나라님 식구들은 백성들의 배를 채워줄 생각은 안 하고 허구한 날 식구들끼리 싸움박질만 했다.

형제가 형제의 목에 칼을 들이미는 모습을 본 백성들은 이 나라가 앞으로 어떻게 되려나 고민을 했을 것이다.

어수선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고 결국 힘이 약한 사람들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강력한 힘을 앞세워서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3번째 왕이 되었다.

보통 왕 즉위식은 선왕이 죽고 나서 이루어지는데 조선에서는 첫 번째 왕도 살아 있었고 두 번째 왕도 살아 있었는데 세 번째 왕이 들어선 것이었다.

우스갯소리로 ‘네가 해라 조선 왕!’이 아니었다.

첫 번째 왕도 두 번째 왕도 이방원의 힘에 눌려서 왕 자리를 넘겨준 꼴이었다.




이제 이방원의 조선이 되었다.

하지만 왕권을 거머쥐었다고 해서 세상에 왕에게 호락호락하지는 않는다.

조선은 왕의 나라이기도 하지만 백성들의 나라이기도 했다.

왕이 잘 먹고살려면 백성들도 잘 먹고살아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이방원은 백성들을 먹여 살릴 일을 찾아야 했다.

가만히 살펴보니까 가을 추수가 끝나고 봄 파종 때까지 백성들에게는 일거리가 없었다.

너무나 아까운 일손이 남아돌고 있었다.

만약 그들에게 일거리를 주고 그들이 품삯을 받으면 최소한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될 것 같았다.

기왕이면 백성들에게 시킬 일은 누구에게나 이익이 될만한 일이어야 했다.

그래야 명분도 얻고 실리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방원은 장마철에 한양성을 물바다로 만드는 그 물들을 다스리자고 했다.

물이 고이지 않고 빠져나가도록 물의 길을 만들자고 했다.

사람 손으로 시냇물을 열었다고 해서 ‘개천(開川)’ 공사라고 했다.




일거리가 없어서 놀고 있던 백성들이 이 공사에 뛰어들었다.

무려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일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5만 개의 가족에게 일자리와 먹거리가 생긴 것이다.

후에 그 물길은 몇 번의 확장 공사를 벌여 맑은 물이 흐르는 시내라는 뜻의 ‘청계천(淸溪川)’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 개천 공사 때문에 이방원은 백성들을 먹여 살리는 임금이라는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역사는 이방원이 엄청나게 강하고 무서운 성격의 군주라고 말한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될 것 같으면 동생들도, 처남들도, 사돈집 식구들도 죽여버렸다.

세자로 책봉했던 아들도 폐하였고 신하들도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그랬던 그에게도 두려운 대상이 있었다.

바로 백성들이었다.

백성의 마음이 곧 하늘의 마음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선뜻 왕의 자리를 내주었다.

가장 백성의 마음을 잘 헤아릴 것 같은 아들 세종 이도(李祹)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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