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리 강물을 보며 옛 생각에 젖어 보았다

by 박은석


강원도 태백산 자락에서 발원하여 정선 땅을 지나 경기도 여주 양평으로 이어지는 남한강.

북한 땅 금강산 자락에서 흘러든 물이 강원도 춘천을 거쳐 경기도 양평으로 이어지는 북한강.

그 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 양수리에 다녀왔다.

두 물이 만나는 시작점이라고 해서 ‘두물머리’로 불리는 곳이다.

예전에는 물줄기를 따라 온갖 뗏목과 나룻배들이 지나다니던 곳인데 지금은 수도권 사람들의 휴식공간이 되었다.

저 물이 가는 길을 따라 팔당을 지나면 한강으로 이어지고 그게 광나루, 송파나루 등의 여러 나루터를 지나 마포나루에 닿는다.

옛사람들은 마포나루에서 짐을 챙기고 내려서 터벅터벅 서대문을 거쳐 한양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가지고 온 물건들을 서대문 밖에서 팔고 운이 좋으면 서대문 안쪽 한양의 어느 양반집에 팔았을 것이다.

두둑하게 삯을 받으면 그 돈을 고이 품에 안고 강물을 거슬러 집으로 갔을 것이다.




양수리 강가에 앉아 있으면 느릿하게 흘러가는 물줄기를 닮는지 내 머릿속의 생각도 느릿하게 흘러간다.

따뜻한 봄햇살에 어우러져서인지 갓 피어나는 목련과 벚꽃의 향기에 마취되어서인지 노곤한 졸음이 몰려오기도 한다.

아마 오랜 옛날에도 이 강가에서 물을 보면서 졸음에 겨워했던 사람이 있을 것이다.

수양버들 가지를 따다 버들피리 만들어 그 곡조에 흥겨워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강가에 앉아 물 위를 보고 있노라니까 옛사람들이 살던 마을이 강물 위에 그려졌다.

낮은 담장이 드리워진 초가집들도 있었고 버드나무 가지 따서 버들피리 입에 문 아이도 있었다.

여염집 처마도, 대문 옆의 감나무도, 돼지우리도 물을 머금은 채 그곳에 있었다.

팔당에 댐을 쌓는 그 마을 위로 물이 덮여 버렸을 뿐이다.

저 물 밑바닥에는 여전히 그 마을들이 있을 것이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마을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멀리서 보면 마냥 푸릇한데 가까이서 보면 희뿌연 물이다.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말라고 연막을 쳐 놓은 것 같다.

그래.

삼천리강산 어디인들 조용하게만 흘러가는 물이 있을까?

어느 물이든 그 흐르는 만큼 갖가지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웃음도 있고 울음도 있고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고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다.

그 모든 것들이 물에 섞여 거대한 강물이 되어 흘러가는 것이다.

태백산,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깨끗한 물들이 사람 사는 세상을 지나면서 온갖 지저분한 것들을 다 끌어왔다.

그리고 도도히 흘러가고 있다.

저 아랫마을 사람들은 그 물을 떠서 손을 닦고 얼굴을 씻고 밥을 짓고 빨래를 할 것이다.

그렇게 다 쓴 다음에는 구정물이라며 하수구로 내려보낼 것이다.

그러면 그 물이 또 땅속을 헤매다가 결국에는 한강으로 흘러갈 것이다.

그리고 그 한강물을 또 떠 와서 마시고 씻고 할 것이다.




남한강물은 알고 있을까?

북한강물은 알고나 있을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깨끗한 물이고 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더러운 물인지 과연 알고는 있을까?

아니다.

모를 것이다.

물은 애시당초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흙탕물이면 어떠며 똥물이면 어떠냐고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세상 그 어떤 지저분한 물이라도 이 강물에만 닿으면 그것으로 괜찮은 것이라며 토닥여주었을 것이다.

물들만 그렇게 받아준 것은 아니었다.

물 위를 배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까지도 넉넉한 마음으로 저 강물은 받아주었다.

부잣집 도령도 가난한 집 마당쇠도, 임금님을 만나러 가는 높은 양반도 임금님 눈에 찍혀 끌려가는 끈 떨어진 죄인도 저 강물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주었을 것이다.

“괜찮다, 괜찮다, 어차피 한 세상이다.”하면서 너그럽게 태워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양수리의 물은 옛날에도 흘렀고 오늘도 흐르고 있다.

양수리 강물을 보며 옛 생각에 젖어 보았다001.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