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천(炭川)을 따라 역사를 걷는다

by 박은석


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 성남시에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냇물이 있어서 시민들의 마음을 만족스럽게 한다.

봄이면 화사한 꽃길을 열어주고 여름에는 물소리 어우러진 초록색 녹음을 선사하며 가을에는 단풍빛 찬란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겨울이면 눈 덮인 풀숲을 선사해준다.

물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양 옆으로 갈대가 어우러지고 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식혀준다.

상쾌한 공기를 찾아 운동하러 오는 사람도 있고, 사랑의 이야기를 나누러 오는 연인들도 있고 반려동물들에게 뜀박질시킬 공간을 찾아서 오는 동물애호가들도 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저녁나절이면 고즈넉한 길을 따라 산책을 나서는 이들로 북적인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이들은 이 길을 따라 한 시간이면 잠실이요 또 한 시간이면 양평에 갈 수 있다며 탄탄한 다리를 뽐낸다.

누구나 찾아와도 모두 반기는 이 냇물은 바로 ‘탄천(炭川)’이다.




탄천은 용인시 기흥구 청덕동에 있는 법화산에서 시작된다.

조그마한 실개천이 마북동을 지나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에서 동막천과 합쳐지면서 물줄기가 제법 넓어진다.

이제 꽤 모양새를 갖춘 시냇물은 분당구, 수정구를 관통하여 흐르고, 수서를 지나 대치동에 이르면 양재천을 끌어안아 거대한 물줄기를 이룬 채 잠실종합운동장 앞에서 한강에 가 닿는다.

35킬로미터가 넘는 물줄기는 굽이굽이 흐르면서 곳곳에 초목을 푸르게 만들어준다.

이 물을 탄천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로 이 시냇물이 숯가루가 가득한 검은 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이 지역에 숯막이 많았고 거기서 나온 숯가루가 개천에 녹아들어 물이 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검은 개천을 우리말로 ‘숯내’라고 했는데 한자로 지명을 표기하니 ‘탄천(炭川)’이 된 것이다.

‘숯내’라는 명칭에서 받침 ‘ㅊ’이 탈락하면서 오늘날 ‘수내’라는 지명을 남기게도 되었다.




100년도 훨씬 전에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숯가마에서 숯을 굽고, 그 검댕 숯을 지게에 지고, 개천을 따라 송파나루까지 걸어갔을 것이다.

빠르게 걸으면 반나절, 천천히 걸으면 하룻길은 되었을 것이다.

송파나루에서 잠시 피로를 풀고 나룻배에 올라 마포나루까지 뱃길을 갔을 것이다.

그리고 마포나루에서 내린 후 또 지게를 메고 신촌을 거쳐 서대문 앞에까지 가서 한양 양반집에 숯을 팔았을 것이다.

한양 부잣집에는 나무를 때지 않고 숯을 사용했으니까.

그렇게 긴 노정길을 마치고 옆구리에 엽전을 차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얼마나 흥겨웠을까? 돌아오는 길에 마포나루 장터에 들러 한양 사람들이 쓰는 물건들을 신기한 듯 들여다보았겠지.

그러다가 집에서 애써 고생하는 부인을 위해 광목 몇 필을, 다 큰 딸아이를 위해 비단구두를, 어린 자식 입에 넣어 줄 눈깔사탕 몇 개를 사 들고 오는 탄천길은 얼마나 즐거웠을까?




그 옛날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이곳이 지금은 대한민국 최고의 살기 좋은 땅이 되었다.

지금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천당 옆에 있는 분당이라고, 천당 아래에 있는 분당이라고 자랑삼아 이야기한다.

하지만 유유히 흐르는 탄천의 역사를 보면 우리의 알량한 자랑은 잠시 내려놓는 게 낫겠다.

세상은 돌고 돌며 역사는 반복된다.

높은 산이 낮아지고 낮은 땅이 높아지기도 한다.

양반 가문이 몰락하기도 하며 상놈 가문이 출세하기도 한다.

탄천은 그 모든 변화를 묵묵히 보고 있었다.

유유히 흘러가는 탄천을 바라보면 지금의 내 모습과 내 처지가 자랑할 것도 부끄러워할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넉넉한 현실에 살고 있다면 감사할 일이고 힘겨운 현실에 살고 있다면 지금보다 더 좋아질 미래를 소망하면서 몸부림치며 살아가면 될 것이다.

오늘도 탄천은 흘러흘러 한강으로 가고 나는 그 물소리를 들으며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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