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를 잠깐 바라보았다.
그야말로 잠시의 시간이었는데 그 아이는 쉴 새 없이 재잘거렸고 깔깔거렸고 뛰어다녔다.
아이를 잡으려는 엄마도 아이와 보조를 맞춰서 소리 높게 웃어주었다.
아이는 뭐가 신기한지 연신 “이게 뭐야?” 물었고 엄마는 그 물음에 일일이 대답해주었다.
아이는 비둘기가 구구거리며 먹이를 쪼아먹는 모습을 보고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달려가 쫓아버렸다.
비둘기가 조금 날아가서 저쪽에 자리를 잡으면 아이는 또 그리로 달려가 비둘기와 실랑이를 하였다.
만약 나 같은 어른이 비둘기를 내쫓느라고 달려간다면 어떨까?
자칫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에게 들키는 날이면 뉴스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만약 비둘기를 보고 깔깔거린다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한 번 더 쳐다보면서 “쯧쯧” 혀를 찰 것이다.
어린아이에게는 보기 좋은 모습인데 어른에게는 보기 싫은 모습으로 비친다.
어린아이의 모습이 보기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어른인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아이에게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이 잃어버린 것은 다름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탄성이다.
“우와!”하고 외쳤던 적이 언제였을까?
산에 올라갔을 때, 단풍 구경 갔을 때, 봄꽃을 보았을 때 정도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와!”하고 감탄사를 내뱉는 순간 내 마음이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보고 듣고 만져보면서 감탄하는 것은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본성일 것이다.
이 본성에서 예술적인 기질이 발전되기도 하고 문학적인 기질이 발전되기도 한다.
실제로 어린아이들은 자기 스스로 노래를 만들어서 부르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모두 훌륭한 음악가요 미술가이며 시인이요 소설가이며 엔지니어요 아이디어뱅크라고 한다.
이 사실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고 노력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켜켜이 쌓인 경험들은 일단 내려놓는다.
그다음에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바라본다.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를 태어나서 처음 듣는 것처럼 들어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연신 감탄해 보는 거다.
감탄의 소리를 내는 것이 뭐가 중요하겠냐고 하겠지만 실제로 해보면 소리를 내는 것과 내지 않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감탄의 말들을 터뜨리고 나면 신기하게도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모든 음악이나 미술의 시작은 감탄에서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음악과 미술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의 발전에는 어떤 영역이든지 간에 반드시 감탄하는 시간이 있었다.
오죽했으면 “와우!”하는 감탄의 소리가 만국공통어가 되었을까?
사람에게도 감탄의 소리를 쏟아부으면 그 효과가 나타난다.
사실 뒤집기도 못하던 아기가 일어나 두 발로 걷는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는데 자기 스스로 터득하고 자기 힘으로 일어나 서고 걷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원래 이렇게 기적 같은 일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아기가 그 기적의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가 하면 아기에게 수없이 박수치며 응원해주는 엄마와 아빠의 감탄 때문이다.
부모는 단지 감탄을 해줬을 뿐인데 아이는 그 감탄을 먹고 기적을 일으킨다.
그런데 그렇게 기적 같은 일을 척척 해냈던 아이가 성장해서는 기적은 고사하고 왜 평범하고 무능한 사람이 되고 마는가?
자세히 살펴보면 그에게 감탄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뭐 그걸 가지고... 겨우 그거야?”라는 말만 나돈다.
아! 엄청난 인생의 비밀을 알았다.
감탄이 사람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