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고의 날은 언제일까?

by 박은석


가만히 넋 놓고 있으면 그 틈을 참지 못하고 불안감이 스멀스멀 밀려온다.

‘만약에...’로 시작되는 이 생각의 꼬리들은 좋은 생각으로 이어질 듯도 한데 보통은 안 좋은 생각으로 도배를 한다.

특히나 앞날에 대해서는 점점 더 나빠질 것 같은 걱정이 든다.

‘만약에 오늘 내가 교통사고를 당한다면...’, ‘만약에 나에게 암세포가 발견된다면...’ 같은 식이다.

지금까지도 이렇다 할 좋은 인생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앞날에 더 안 좋아진다면 내 인생은 실패한 것인가 하는 우울한 마음이 똬리를 튼다.

그러다가 고개를 세차게 휘젓는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크게 해서 동네 한 바퀴라도 걷는다.

딴생각이 들어오지 못하게 말이다.

감사하게도 이 도시는 잘 꾸며져 있다.

도로 옆 가로수가 늘어진 길도 괜찮고 야트막한 동산의 산책로도 좋고 졸졸 흐르는 실개천 옆길도 좋다.

그렇게 걷다 보면 쓸데없는 생각들이 하나씩 지워지곤 한다.




그래도 안 되겠다 싶을 때는 내 인생에서 괜찮았던 순간들을 헤아려본다.

하얀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반장 선거에서 당선되던 날, 중학교 수학여행 때, 친구 셋이서 제주도를 자전거로 일주했던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찻집에서 대학 합격 소식을 들은 날, 대학 신입생 때 대성리로 MT갔던 날.

사랑 사랑 내 사랑에게 고백을 했던 날도 있다.

그때 우리 발 앞에 떨어진 도토리는 아직도 집안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

결혼 승낙을 받은 날, 한 여름의 결혼식, 오랜 기다림 끝의 첫아이를 낳은 날, 타국에 떨어져 있었기에 태어난 지 백일이나 되어서야 둘째 아이를 만났을 있었던 날, 그리고 여기저기로 아이들 데리고 다니던 날들.

기억이 가물거릴 즈음이면 빛바랜 사진들과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들을 보며 흐뭇한 시간을 가진다.

잊고 있었는데 지금까지의 내 인생도 꽤 좋은 시간들이 많았었음을 알게 된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과 비슷한 경험을 한 인물들이 꽤 많은 것 같다.

그런 영화도 나왔다.

2차 세계대전 때 공수부대원으로 전투에 참가했다가 포탄에 맞아 두 팔을 잃어버린 헤럴드 러셀이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전쟁이 끝나 고향으로 왔지만 살아갈 날이 캄캄했다.

두 팔에 쇠꼬챙이 모양의 의수를 연결한 자신을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볼까 생각만 해도 낙심이 되었다.

할 수 있는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전쟁후유증으로 평생 동안 자신의 인생을 저주하면서 살게 될 것만 같았다.

인생이 완전히 망가졌고 자신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야말로 벼랑 끝에 서 있는 인생 같았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그래도 내 인생에서 얻은 것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전쟁을 함께했던 전우들을 떠올려보고 자신을 다시 보았다.

자신에게는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있었다.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더 많은 것 같기도 했다.




러셀은 2차 세계대전 동안 사망한 미군이 40만 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섬뜩했다.

그 숫자에 자신이 포함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포탄에 맞았지만 단지 두 팔만 잃었을 뿐이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쇠꼬챙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펜을 잡고 글을 쓸 수는 없지만 타자기로 타이핑은 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부지런히 타이핑을 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 자신이 겪은 전쟁이야기를 책으로 펴낼 수 있었다.

그 책 덕분에 영화에도 출연하였다.

전쟁후유증을 안고 살아가던 상이용사들이 스크린에 나타난 그의 쇠꼬챙이 팔을 보고 큰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 영화의 제목은 <우리 생애 최고의 해>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것을 세지 말고 남아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사십시오.

그러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감사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오늘이 인생 최고의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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