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이지만 전부인 나와 너

by 박은석


어느 가정에나 한 번쯤 경험하는 일인데 순식간에 아이를 잃어버릴 때가 있다.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

첫 아이가 두 돌 때쯤 되었을 때였다.

우리 가족이 인도네시아에서 살고 있었을 때였다.

저개발국가에서의 생활은 뻔한 구석이 있다.

휴일에도 어디 갈 데가 없다.

길거리를 맘대로 나다니기에도 불안하니 외국인이었던 우리는 쇼핑몰이나 호텔 같은 안전이 보장되는 곳에만 주로 갔다.

그날도 어느 쇼핑몰에 갔다.

뭘 사려고 간 것은 아니고 집에만 있기가 답답해서 바람 쐴 겸 나선 것이었다.

어느 옷가게를 둘러보고 바로 옆 가게로 들어갔는데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나를 쳐다보고 나는 아내를 쳐다보며 서로 당신과 함께 있었지 않았냐고 했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여기에 있었는데 보이지 않았다.

재빨리 옆 가게들을 훑었더니 다행히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우리 딸이 있었다.

천만다행이었다.




딸아이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들도 그런 적이 있다.

20층이 넘는 높은 아파트에서 살던 때였다.

아내가 다섯 살 된 딸과 두 살 된 아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가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고 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아들이 재빨리 뛰어 들어가서는 버튼을 누르고 문을 닫아버렸다.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내와 딸은 “어! 어!”하다가 문이 닫혀버렸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아들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쌩하고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잡을 방법이 없었다.

얼마나 놀랐을까? 아내는 부랴부랴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내려가는 동안에 아들이 몇 층에서 멈췄을까 얼마나 생각을 했을까? 1층 엘리베이터 앞에 경비실이 있었는데 마침 경비아저씨께서 밖에 나와 계셔서 혼자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아들을 붙잡았다.

뒤이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내려온 아내가 아들을 인계받았다.

천만다행이었다.




우리에게는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난 일이었지만 그 몇 분 동안의 시간은 정말 지옥 같았다.

아이를 잃어버린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온갖 불안감과 공포감이 몰려왔다.

옆에 뭐가 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고 오직 ‘우리 아이’만 떠올랐다.

금방 찾아서 그렇지 만약 금방 찾지 못했으면 찾을 때까지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니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설마 그러겠냐 하겠지만 정말 그런다.

아무리 우리 부부가 점잖은 사람들일지라도 그 상황에서는 점잔을 뺄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 아이가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의 전부가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 그 기분을 느꼈다.

지금 이렇게 우리 부부와 딸과 아들, 네 명이 어우러져 우리 가족을 이루었다.

가족사진을 찍으면 이렇게 넷이 있어야 안정되어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누구 한 사람이 빠져버리면 가족사진이라고 하기에는 아닌 것 같다.

뭔가 불완전하게 보인다.




남들은 우리가 네 식구이든 세 식구이든 신경을 쓰지 않는다.

네 식구라면 숫자 4를 생각할 것이다.

넷 중에서 셋이 있으면 4분의 3이니까 괜찮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 식구들이 단지 숫자 1, 2, 3, 4가 아니다.

한 명 한 명이 특별하고 소중한 식구이다.

넷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된다.

만약 하나라도 빠지는 날에는 우리 가족 전체가 뭉개진다.

성경에서 양 백 마리를 치는 목자가 한 마리를 잃어버리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판에 놔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가 있다.

경제적으로 보면 이해되지 않는다.

아흔아홉 마리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목자의 마음이라면 이해된다.

단순하게 한 마리의 양이 아니라 내 자식과도 같은 양들이다.

한 마리의 양을 잃어버리는 것은 백 마리 전부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하나이지만 전부가 되기도 한다.

내가 그렇고 네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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